경기 고양시 백석동 지하철 3호선 백석역에서 주택가로 들어가면 카페처럼 근사하게 꾸민 작은 서점이 눈에 띈다. 향이 좋은 커피와 생맥주를 팔고 탁자와 의자도 있지만 책보다 음료가 위주인 북카페와 달리 이 곳의 주 메뉴는 책이다. 서점의 이름은 미국 작가 폴 오스터의 소설 제목과 같은 ‘미스터 버티고’. 대형 온라인서점에 밀려 동네 서점들이 대부분 문을 닫은데다 문학의 위기란 경고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는 마당에 문학전문서점을 표방한 대담무쌍한 책방이다.
최근 개점 후 1년을 ‘버틴’ 미스터 버티고를 찾았다. 신현훈(46) 대표는 “직원을 둘 수 없어 일주일 내내 하루 종일 서점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단점은 있지만 최소한 적자는 아니다”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직장 다닐 때 받던 월급의 70%만 받을 수 있으면 행복하게 운영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여유 시간이 없고 수입이 매우 적은 것만 빼면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했다.
신 대표가 문학서점을 연 건 국내 출판시장을 잘 몰라서가 아니다. 온라인서점에서 십수년간 일했고 문학 전문 출판사를 차려 2년간 몇 권의 책을 펴내며 실패를 겪기도 했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점을 차린 이유는 뭘까. “40대 후반이면 직장에선 내리막이고 50대 초반이면 회사에서 나와야 하는데 그때 뭔가를 시작하려 하면 지금보다 더 두려워지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용기를 내보자 했죠.”
평소 소설을 좋아했던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떠난 유럽 여행에서 힌트를 얻었다. 오프라인 서점이 사라져 가는 건 세계적인 추세이지만 유럽에는 여전히 작고 특색 있는 서점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그는 “도서정가제가 시행된다는 소식에 서점 운영이 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며 “직원 한 명 두고 아내와 저녁 한끼 함께할 정도만 되면 오래도록 운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신 대표가 직장을 그만두고 서점을 열자 그의 부인이 가계를 위해 다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서점에는 6,000여권의 책이 있는데 그 중 60~70% 정도가 소설책이다. 문학 서적은 국가별로 구분하고 다시 작가별로 분류했다. 신 대표는 “국내 독자들의 취향이 영미권 소설과 일본 소설에 편중돼 있는데 아시아나 아랍 지역 작가들의 작품도 소개하려 한다”며 “국내 문학계에선 장르 문학을 차별하지만 추리작가 중에도 훌륭한 이들이 많아 그들의 작품도 적극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신 대표의 바람은 교양이 아닌 재미를 위해 책을 읽는 문화가 퍼졌으면 하는 것이다. 소설 애호가로서 순문학과 장르문학 구분 없이 다양한 소설이 관심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몇 개 대형 온라인서점이 출판 시장을 쥐고 흔드는 것도 아쉬운 현실이다. “소설만 해도 대형 온라인서점들의 소설 담당자들 선택에 따라 성공 여부가 결정됩니다. 시장이 획일화되고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어요. 우리처럼 작은 서점들이 많아지면 서점 주인들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소설이 독자들의 관심을 받게 돼 문학 시장도 풍성해지지 않을까요.”
서점 가운데의 진열대에는 신 대표가 엄선한 책들이 놓여 있는데 출판사가 두른 띠지 위에 서점 주인장이 직접 만든 띠지가 덧씌워져 있다. 이날 진열된 책 중 이기호 작가의 소설집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에는 ‘이런 소설이면 웬만하면 잘 팔려야 한다’는 추천사가 쓰여 있고, 정명섭 작가의 ‘조선변호사 왕실소송사건’에는 ‘당신의 킬링타임을 보장한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신 대표는 “가급적 직접 읽고 나서 많이 알리고 싶은 책 위주로 띠지를 만든다”며 “손님이 내가 추천한 책을 읽고 나서 좋았다고 말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미스터 버티고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신 대표도 자신할 수 없다. 출판사를 다시 열어 괜찮은 문학 서적도 내고 싶지만 인근에 대형 서점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당분간은 미스터 버티고가 자리를 잡는 데 집중할 생각이다. 그는 “소설이라면 어느 대형 서점보다 훌륭한 곳이라고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서점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