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안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다. 정확히는, 알고 지내던 사람의 아들이라 확신되는 잘생긴 청년을 만났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과 청년이 부자지간이 아니라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 장담할 수 있을 정도로 청년은 그의 아버지를 복사한 듯 똑같은 모습이었다. 1호선 전철 안이었고, 청년이 승차한 곳이 서민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는 점. 명품을 카피한 백팩을 메고 역시 명품을 카피한 듯한 신발을 신은 점. 표정이 밝지 않은 점 등등을 통해 나는 내 기억 속의 사람이 평탄하지 않게 살았을 거라고 짐작하며 청년을 훔쳐봤다. 내가 그에게 선뜻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못한 것은, 그의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모습이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이십 대의 내 앞에서 그는 신의를 썩은 이처럼 뱉어버렸다. 그는 속된 말로 ‘배 째라’ 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그를 좋게 생각했던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차라리 입을 꾹 다물고 있었으면, 모두들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입을 열었고, 너희는 더 나쁘다며 목 혈관을 꿈틀대며 외쳤다. 청년은 대학이 있는 역에서 내렸다. 예감이 이상했던지 그는 내리자마자 뒤를 돌아보며 재빨리 눈으로 안에 탄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사람들을 훑어가던 그의 눈과 내 눈이 마주치자 그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렇게 그가 나를 바라보는 동안 전철이 출발했고, 훔쳐봤던 나는 진땀을 흘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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