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가격에 연동되는 파생결합증권(DLS) 투자자들이 올해 1분기에만 3,000억원 이상 원금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저유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수천억원대 추가 손실이 우려된다.
5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1∼3월 원유 DLS 상품 215개, 4,999억원어치의 만기가 도래했다. 이 가운데 3,137억원의 손실이 확정돼 고객이 돌려받은 돈은 1,862억원에 불과했다. 평균 손실률이 62.76%다. 투자자들이 100만원을 투자해 37만원의 원금만 건졌다는 뜻이다.
개별 상품 가운데 미래에셋증권이 2013년 1월 100억원어치를 발행한 '미래에셋증권 522호 DLS'의 손실률이 74.61%로 가장 높았다.
3월 말 기준으로 만기가 되지 않은 원유 DLS 상품은 611개, 6,686억원어치다. 이 중 378개, 4,890억원어치가 녹인(Knock-in·원금 손실 가능) 구간에 들어가 있다. 발행액 기준으로 약 73%가 원금 손실 위기에 처한 셈이다.
이들 DLS 대부분은 국제 유가가 발행 당시의 80∼90% 수준까지 극적으로 회복되지 않으면 손실이 확정된다. 시장에서는 보수적으로 손실률을 50%쯤 잡아도 원유 DLS에서 2,500억원가량의 추가 손실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서부텍사스산 원유(WTI)가 지난 2월 26.21달러까지 추락했다가 최근 40달러 수준까지 회복됐지만 이 정도로는 DLS 구조상 투자자들이 녹인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현대증권이 2014년 7월 브렌트유와 WTI를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현대able DLS 196호'는 두 원유가 중 하나라도 발행 때의 50% 이하로 내려간 적이 있으면(녹인 진입) 만기 때 두 기초 자산이 모두 85% 이상으로 회복돼야 약정한 연 7.5%의 수익을 지급한다. 브렌트유가 배럴당 111달러일 때 발행된 이 상품의 투자자들이 원금 손실을 피하려면 지난 1일 기준 38.67달러인 브렌트유가 94.35달러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경기 침체와 원유 공급 과잉 국면이 쉽게 타개될 조짐이 보이지 않아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선 이상을 회복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작년 원유 DLS에서는 이미 1,117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작년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국제 유가 급락 사태로 원유 DLS 상품에서만 이미 4,000억원대 손실이 났다.
앞으로 발생할 손실을 고려하면 최대 누적 손실 규모가 6,000억∼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국제 유가가 100달러 이상일 때 발행된 원유 DLS는 200개, 3,194억어치에 달한다.
투자자들이 낯선 파생 상품인 원유 DLS에 대규모 자금을 쏟아부은 배경에는 증권사와 은행 등 금융권의 적극적인 판촉과 권유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향후 투자자들과 금융사 간의 법적 갈등이 벌어질 수도 있다.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해를 봤지만 금융권은 투자 성과에 상관없이 최대 판매액의 1%에 가까운 수수료를 챙길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원유 DLS 투자자 일부는 금융감독 당국에 불완전 판매 탓에 손해를 봤다면서 잇따라 민원을 제기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원유 DLS 손실률이 높게 나오는 상황에서 일부 소비자들이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며 "일단 시장상황을 더 모니터링하다가 특정 금융사를 중심으로 불완전 판매에 관한 조직적 정황이 포착되면 상세히 들여다보고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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