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로 보는 세계]

논란 속에 지난달 국회에서 통과된 테러방지법은 어느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듯하다. 하지만 테러방지법 쟁점사안들에 대해선 사실 이제부터 심각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아쉬운 점은 지난 법안통과를 둘러싼 논의과정에서 이러한 사안들은 심도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테러방지법의 논의 과정에서 정밀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핵심사안 중 하나는 ‘조사(調査)’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의이다. 이 ‘조사’가 범죄증거 수집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보수집과 분석을 의미하는 것인지가 분명하게 다루어졌어야 했다.
법 집행과 정보활동의 엄밀한 구분 필요
국가의 대(對)테러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테러사건과 관련된 ‘사실’을 찾는 것이다. 이 ‘사실’은 테러사건을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였는가를 알려주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찾는 행위는 법 집행활동 (범죄수사와 검찰기소, 그리고 형사처벌을 포함하는 행위)에서 범죄증거를 수집하는 것과 정보활동 (첩보수집과 정보분석, 그리고 분석결과 보고로 이어지는 행위)에서 첩보 또는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엄격하게 구분된다.
비록 일반인들에게는 도ㆍ감청이나 심문, 감시 등이 동일한 공권력의 활동인 것처럼 보이지만 검찰, 경찰과 특별사법경찰 등 법 집행 기관에 의한 범죄수사와 국가정보원이나 정보사령부와 같은 정보기관에 의한 정보활동은 본질적으로 다른 행위이다. 법 집행은 원칙적으로 범죄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개시되는 사후대응적 (reactionary)활동이며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의심되는 특정 개인이나 개인들을 기소하고 궁극적으로 법정에서 죄를 입증하고 처벌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다. 이런 측면에서 법 집행은 형사재판을 위한 범죄의 증거를 수집하는 활동이며 이와 관련된 범죄자의 체포와 구금, 증거의 수집과 압수 등을 포함한다.
반면 정보활동은 테러와 같은 특정 위협 행위가 발생하기 이전에 예방이나 억제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선제적 (preactive) 행위이며 위협행위를 음모하거나 준비하는 행위자를 찾아내어 이들이 그러한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차단하는데 주력한다. 원칙적으로 정보활동은 첩보의 수집과 분석, 그리고 분석된 정보의 보고로 이루어지며 대통령과 같은 집행책임을 지는 결정권자나 집행기관을 지원하는데 주된 목적이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법 집행 활동은 행정부의 집행행위이며, 정보활동은 행정부의 집행활동을 지원하는 지원행위이다.
이와 같은 법 집행과 정보활동 간의 본질적인 차이는 증거나 정보의 수집과정에서 다른 법적 기준이 적용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법 집행은 특정 개인에게 체포와 기소, 처벌이라는 직접적인 부정적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에 개인의 헌법적 기본권 보장을 위한 보다 확실한 잣대 또는 게임의 룰이 적용된다. 법 집행의 결과는 한 개인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삶에 중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강력한 보호 장치를 둔다는 민주주의의 원칙 때문이다. 따라서 법 집행 기관은 수사 활동에서 엄격한 법적 절차를 따라야 한다. 이 법적 절차는 보통 형사소송법을 의미한다. 여기에 관련된 주요 사항들로는 미란다 원칙의 고지, 무죄추정의 원칙,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 불법적인 증거수집이나 인신구속, 자백을 통해 얻은 결과물 등은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못한다는 원칙, 엄격한 영장주의의 원칙, 전문증거배제의 원칙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게임의 룰을 위반한 법 집행 활동의 결과물은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못하는 등 국가의 법 집행 활동에 상당한 페널티가 주어지게 된다.
반면 정보활동은 첩보의 수집과 분석, 보고가 주된 기능이기 때문에 보다 완화되고 느슨한 첩보나 자료수집의 원칙이 적용된다. 즉 정보활동은 형사소송법을 따르지 않거나 다소간의 헌법상 기본권 침해도 국가안보를 위한 합리적이고 분명한 필요가 있다면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러한 이유는 정보활동은 기본적으로 한 개인의 삶에 심각한 부정적인 영향을 직접적으로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칙은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우리와 유사한 자유민주주의 동맹국들에서 잘 정착된 사안들이다.
한편 종종 정보기관의 활동을 유신시대의 중앙정보부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과거의 경험은 현재의 정보활동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현실적으로 권위주의 국가들이나 독재국가들에서는 위와 같은 법 집행 활동과 정보활동의 구분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으며 사실상 그 구분이 의미가 없다. 이러한 국가들의 대테러 활동과 테러리스트의 처벌은 대체로 권력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법 집행과 정보활동의 법적 성격의 차이는 정보활동에서 알게 된 사실을 법 집행기관에서 범죄증거로 재판에 기소하는데 사용하게 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 근본적으로 법 집행에서는 ‘독수독과(毒樹毒果)의 원칙’ (독에 오염된 나무의 과실 역시 오염된 것이라는 추정)이라고 해서 헌법적 기준을 위반한 증거수집과 그 증거수집에서 발생한 모든 증거는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못한다. 따라서 보다 완화된 법적 기준이 적용되는 정보활동을 통해 수집된 정보를 범죄증거로 사용할 경우 이 증거를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문제가 된다. 반대로 정보활동의 과실을 범죄증거로 사용할 경우 여러 가지 헌법적 기본권 침해의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이는 보다 낮은 수준의 법적 기준과 보다 완화된 작동 원칙에 따라 수집된 정보가 형사처벌을 목적으로 한 범죄증거로 사용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개인의 헌법적 기본권을 보다 확실하게 보장하게 위한 목적 때문이다.

테러관련 정보 범죄수사로 효과적으로 전용해야
대테러 활동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야 할 사안 가운데 하나는 이 정보활동을 통해 획득한 ‘사실’을 형사처벌의 증거로 사용할 때 나타나게 되는 법률적 문제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간첩조작사건으로 알려진 수 년 전 서울시 모 공무원 사건도 엄밀하게 보자면 간첩조작이라기 보다 정보활동을 범죄증거로 전용하여 형사기소를 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절차상의 실패일 것이다. 당시 사법부의 판단은 피고가 간첩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간첩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의 증거효력이 없기 때문에 간첩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음이었다.
미국의 9ㆍ11 테러 조사 위원회 역시 정보기관이 알고 있었던 테러관련 정보를 법 집행 기관의 범죄수사로 알맞게 전용하지 못한 것을 9ㆍ11테러의 주요한 발생 원인으로 지적한 바 있다. 9ㆍ11테러 이후 미국 등 서방 동맹국들은 법 집행기관과 정보기관의 단절을 극복하고 정보수집, 분석과 범죄증거 수집, 그리고 검찰기소의 유기적 연계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한 대테러 담당관의 지적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의 사생활과 기본권을 보호해야 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책무와 법적 성격이 다른 정보활동과 법 집행활동 간 유기적 연계의 어려움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우리정부와 사회가 테러방지법을 계기로 전반적인 국가의 대테러 시스템 구축을 하는 시점에서 이러한 정보활동과 법 집행활동, 그리고 개인의 기본권 보호와 관련된 사안들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면밀한 고려가 필요할 것이다.
일반적인 범죄와 비교할 때 테러 사건의 어려운 점은 범죄가 완결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 범죄는 아무리 끔찍하고 극악무도하더라도 대규모 살상이나 국가자체의 안보를 위협하는 정도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달 벨기에 테러에서 알 수 있듯이 테러사건은 실제 발생할 때까지 기다리기엔 그 위협이 너무 치명적이고 감수할 피해가 심각하다.
때문에 테러사건은 법 집행의 일반적 원칙인 사후대응의 패러다임으로 접근할 수 없다. 선제적인 정보활동과 처벌적인 법 집행활동의 유기적 결합이 필연적이라는 얘기이다. 이러한 이유로 테러 관련 ‘사실’이 정보에서 범죄증거로 전용되는 과정에선 필연적인 딜레마가 발생한다. 결국 사법당국이 테러공격 진행 과정이라고 판단한 상황에 개입하고 차단해야 하는데 이 때 다루는 정보나 증거들은 합법이거나, 일상적이거나, 혹은 불법이어도 그 정도가 경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종종 사법ㆍ정보당국의 감시나 비밀활동 등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보활동과 법 집행 활동 간 구분은 모호하며 중첩적이다. 대테러 활동의 핵심 사안 가운데 하나는 이러한 딜레마를 얼마나 슬기롭게 다루고 테러의 억제와 예방, 그리고 처벌이라는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것인가이다. 테러방지법을 근간으로 이루어지게 될 시행령과 대테러 활동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충분히 반영되기를 기대한다.
윤민우 가천대 경찰안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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