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문화 속에서 술에는 단순한 기호식품 이상의 가치가 부여돼 왔다. 말(斗)술도 사양하지 않는다는 뜻의 ‘두주불사(斗酒不辭)’는 성품이 굳세고 활달하다는 수식어와 비슷하게 쓰였다. 또한 술을 마셔도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는 기력(氣力)의 크기와 진중한 인품을 반영하는 증표 같은 것으로 인식됐다.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1737~1805) 선생의 둘째 아들인 박종채는 부친의 풍모를 상찬하여 ‘말술을 마시고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으며, 일단 논쟁이 붙으면 사흘 밤낮을 쉬지 않았다’고 적었을 정도다.
▦ 술은 거침없는 풍류의 동반자로 여겨지기도 했다. 술에 대취해 채석강물에 비친 달을 건지려다 강과 하나가 됐다는 중국 당나라 때의 시선(詩仙) 이태백의 일화가 문화적 고정관념을 형성한 것일까. 근ㆍ현대의 수많은 우리 묵객(墨客)들 역시 술에 얽힌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시인 조지훈 선생은 일찍이 수필 <주도유단>을 통해 바둑의 급에 맞춰 술꾼의 급을 나누기도 했다. 시인 변영로 선생은 아예 당신의 음주실록을 <명정 40년>이라는 단행본으로 묶어낼 정도로 술을 즐겼다.
▦ 음주를 즐기는 전통문화 탓일까. 최근까지도 술집은 기업을 비롯한 사회조직의 접대와 회식의 중심 공간을 차지하며 번성해왔다. 특히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을 구가했던 1990년 초반부터는 강남 일부 지역부터 룸살롱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 불야성을 이루기도 했다. 얼마 전 대법원에서 성매매 등의 혐의로 중형이 확정된 모 기업형 룸살롱은 건물 지하 3개 층을 다 썼는데, 룸이 182개에 종업원 수도 1,000여명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하지만 요즘엔 기업 접대문화의 변화와 오랜 불경기 탓에 룸살롱은커녕 일반 술집도 유례 없는 불황을 타고 있다. 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술과 안주 등을 전문으로 파는 주점업의 서비스업생산지수는 73.0으로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서비스업생산지수는 2010년 생산지수를 100을 기준으로한 비교치다. 반면 가계동향의 주류 소비지출은 지난해 월평균 1만2,109원으로 역대 최고치로 나타나,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진 국민이 술집에 가는 대신 술을 사다 집에서 마시는 추세가 강해진 것으로 풀이됐다. 불경기에 부지불식 간에 음주문화까지 바뀌는 것 아닌가 싶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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