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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아, 옛날이여’ 냉전 시대가 그리운 北

입력
2016.04.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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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냉전시대는 수백년의 근현대력사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대’였다.”

북한 노동신문 2일자 논평에 나오는 대목이다. 북한 말인즉슨, 냉전 시대 동서가 자기가 속한 진영의 나라와 민족들의 이익을 대표하고, 서로에 대한 견제와 힘의 균형이 이뤄져 평화로웠다는 것이다. 핵무기 경쟁의 불안 속에서 공포의 균형이 지배하던 그 시절을 평화의 시대로 기억하는 북한의 인식은 북한의 여러 도착증 중의 하나다.

냉전 시대에 대한 이런 향수의 배경엔, 북한 스스로 고백하듯 혈맹인 중국이 한미와 손잡고 유엔 대북제재 결의에 동참해 자신들을 압박하고 있는 “참담한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중국과 소련의 든든한 후원을 받던 그 시절과 달리, 미소 진영 대립이 해체된 탈냉전 시대는 북한으로선 “(우리를) 도와주겠다는 나라도 없다”(지난달 30일자 노동신문 논평)고 한탄하게 만드는 고립의 시절이다.

실제 냉전 시대는 북한이 중소분쟁 등으로 몸값이 치솟던 전성기였다. 소련과 중국의 지원 속에서 70년대 초까지 북한은 10~20%의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경제나 군사력 모두에서 한국을 훨씬 능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2년 북한을 방문한 미국 저명 언론인 해리슨 솔즈베리는 북한에 대해 “일본을 제외하고 아시아에서 가장 산업화된 국가”로 평가하기도 했다. 미국의 베트남전패배와 제3세계 공산주의 운동에 힘 입어, 김일성은 “세계 도처에서 미제의 각을 뜨자”고 선동하며 제3세계의 리더인양 의기양양했다. 이 무렵 정통 마르크스ㆍ레닌주의에서 이탈해 주체사상이 북한의 국가이념으로 확립된 데도 북한 나름의 자아도취적 자신감이 반영된 측면이 없지 않다. 그 당시 북한 지도부나 주민에게 김일성은 마르크스나 레닌 보다 더 위대한 공산주의 영웅으로 보였을 것이다.

“단 하나의 사상으로도 우주의 무한대한 공간을 채울 수 있다”(노동신문 2일자 논평)거나 “인류는 백두산대국이 자주의 등대, 정의와 진리의 상징으로 어떻게 빛나는가를 가슴 후련히 보게 될 것이다”(3일 국방위 담화) 등 헛웃음 짓게 만드는 저 북한의 과대망상이 60~70년대만 해도 영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최근 출간한 <불가사의한 국가>에서 김정은 시대 북한의 노선이 바로 북한의 자칭 황금기 시대인 60~70년대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탈냉전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고, 체제 구조상 적응할 수도 없는 북한이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들이 성공했던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는 것이다. 빅터 차 교수는 이를 ‘신주체 복고주의’라고 부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근 미중 패권 경쟁으로 우려되는 ‘신냉전’ 가능성은 북한에겐 더 없이 반가운 기회다. 동북아에서 미일 대 중러의 대립이 격렬해질수록,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중국에게 북한은 미우나 고우나 버릴 수 없는 카드가 된다. 실제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두고 중국 대 한미의 갈등이 커졌을 때 뒤에서 웃음 짓는 이가 김정은이란 얘기가 적지 않았다.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사드 배치 등 한미일 3각 안보체제 강화는 현 동북아 구도상 중국의 반발을 야기하고 이는 다시 북한의 활로를 열어주는, 의도와는 정반대의 부메랑 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북한이 신냉전의 최대 수혜자라면 최대 피해자는 우리나라다. 미국과의 안보 동맹과 중국과의 경제 교류로 안보ㆍ경제 협력체제가 특이하게 분리돼 있는 우리로선 안보ㆍ경제를 진영 체제로 묶어버리는 냉전 구도가 형성되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신냉전을 막기 위한 우리 정부의 미중 균형외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달 31일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중 관계가 복원되는 모습이 그려져 그나마 다행스럽다.

송용창 정치부 차장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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