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아메리카 남서단에 있는 정열의 나라 멕시코의 최고 인기스포츠는 축구, 그 다음은 태권도다. 멕시코 전역에는 약 4,000여개의 태권도장이 있으며 수련 인구는 멕시코 인구의 10%를 넘는 200만명으로 추산된다. 2012년에는 세계 최초로 태권도 프로 리그가 출범해 국민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멕시코를 ‘태권도의 나라’로 만든 주인공은 멕시코의 ‘태권도 대통령’으로 불리는 문대원(73) 관장이다. 그는 1968년 멕시코로 건너가 47년 동안 약 30만명의 제자를 배출했고, 이 가운데 유단자가 5만여명이 넘는다.
지난 1일 전북 무주 태권도원에서 열린 해외 태권도 지도자 초청 포럼 차 고국을 방문한 문 관장은 4일 본보와 만나 “태권도는 단군 이래 한민족에게 주어진 가장 큰 무기이자 자산”이라면서 “하지만 이제는 세계의 것이다. 태권도의 기본인 무도정신을 잃지 말되, 재미있는 태권도 보급을 위해 프로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멕시코에는 이미 2012년 문 관장이 주도한 태권도 프로 리그 ‘Tk-5’가 출범했다. 지역별 대표선수 5명이 출전해 팀 대결을 벌이는 리그제로 선수 1명당 경기 시간이 단 1분이다. 복싱이나 이종격투기처럼 링 위에서 펼쳐지며 공간은 국제 규격보다 작고, 헤드기어도 쓰지 않는다. 문 관장은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대회장소마다 축제 분위기이며 티켓은 매진”이라고 말했다.

충남 홍성 출신인 문 관장이 태권도와 인연을 맺은 건 대전중학교 시절 취미로 접한 이후부터다. 경희대 정외과 2학년이던 1962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이듬해 오클라호마에서 열린 종합무술대회에 출전, 척 노리스와 브루스 리 등이 함께 뛴 전미 블랙밸트 디비전에서 3년 연속(1965~67년)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면서 운명의 멕시코와 만났다. 1968년 멕시코 땅을 처음 밟아 ‘코리안 가라테’로 알고 있던 멕시코인들에게 태권도를 제대로 알리고자 무덕관이라는 태권도장을 열었다. 문 관장은 “처음엔 태권도라는 말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스페인어로 ‘티(teaㆍ차) 꽌도(Quandoㆍ언제)’, 차를 언제 마실거냐? 라는 식으로 재미있게 접근하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멕시코가 1975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1회 태권도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종합 3위를 기록하며 본격적인 태권도 열풍이 일자 문 관장은 1976년 멕시코태권도협회를 창립했다. 문 관장의 반 백년에 가까운 전파 덕에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멕시코는 사상 첫 금메달 2개를 획득할 만큼 태권도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멕시코의 태권도는 한류로 이어졌다. K팝 열풍이 불고 있는 멕시코인들 사이에서 ‘꼬리아노(한국인)’라고 하면 대우가 달라진다는 게 문 관장의 귀띔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2일 멕시코 방문 첫 일정에서 “수많은 멕시코 한류동호회원들이 K팝을 즐기고 있고, 태권도장에서 200만명이 태권도를 배우면서 한국의 친구가 되고 있다”면서 “최근 멕시코에서 한류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문화적으로도 양국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 관장은 “경기장에서 한국 가요를 틀고 라운드걸 대신 한복을 입은 어린이들을 등장시키는 것도 태권도와 다른 한류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해외 사범 중에서도 원로급인 문 관장은 종주국에 쓴 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50여년간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지도자들의 피땀 어린 노력을 바탕으로 세계화된 태권도의 무도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면서 “세계 태권도 인구가 7,000~8,000만명이라고 하는데 이는 잠재적인 태권도 인구의 10분의1도 안 된다. 이번에 문체부에서 해외 15개국 지도자들을 모두 초청해 현안에 대해 토론을 하는 자리를 만들어준 것만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종주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첫 발을 뗀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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