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판왕’의 위력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그리고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메이저리그에서도 명불허전이었다.
오승환(34ㆍ세인트루이스)이 2016시즌 메이저리그 공식 개막전에서 인상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오승환은 4일(한국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PNC파크에서 열린 피츠버그와의 개막전에서 1이닝 2볼넷 2탈삼진 무피안타로 무실점했다. 이 경기는 이날 열린 3경기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열린 공식 개막전이었다.
오승환은 1994년 박찬호(43)를 시작으로 데뷔 당시 한국 국적 선수로는 16번째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아울러 이상훈(45ㆍLG 코치), 구대성(46ㆍ시드니 블루삭스), 임창용(40ㆍKIA)에 이어 4번째로 한ㆍ일ㆍ미 3개국 프로야구를 차례로 모두 경험한 투수가 됐다. 미국부터 시작해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끝낸 박찬호를 포함하면 5번째다. 올 시즌 최대 10명의 한국 선수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테이프를 끊었다.
오승환은 0-3으로 뒤진 7회말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처음 밟았다. 이기는 경기의 필승조로 분류된 오승환이지만 이날은 지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선발 애덤 웨인라이트(35)의 뒤를 이었다. 3점 차라 추가점을 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12년 연속 개막전 마스크를 쓰게 된 메이저리그 정상급 포수 야디어 몰리나(34)가 오승환과 호흡을 맞췄다.
오승환은 긴장한 탓인지 첫 상대 맥 조이스를 맞아 제구력이 흔들렸다. 시속 93마일(약 150㎞) 짜리 커터를 초구로 택했으나 이 공은 포수 뒤로 빠져 폭투가 됐다. 3연속 볼을 던지던 오승환은 4구째인 시속 91마일(약 146㎞) 직구로 첫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풀카운트 승부를 벌인 끝에 볼넷을 내줬다. 다음 타자인 존 제이소(33)를 2구 만에 2루 땅볼로 유도하며 데뷔 첫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오승환은 다시 피츠버그의 간판타자인 앤드루 맥커친(30)을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으로 내보냈다.
1사 1ㆍ2루 위기에 몰린 오승환은 데이비드 프리즈(33)과도 풀카운트로 접전을 펼쳤지만 시속 83마일(약 134㎞) 슬라이더에 프리스가 꼼짝 못하면서 첫 삼진을 잡아냈다. 자신감을 찾은 오승환은 스탈링 마르테(28)에게도 시속 85마일 슬라이더로 헛스윙을 유도하며 두 번째 탈삼진을 기록했다. 승부는 이 때도 풀카운트까지 이어졌다.
임무를 완수한 오승환은 8회말 세스 매니스(28)에게 마운드를 넘겨줬다. 총 27개의 공을 던진 가운데 스트라이크는 12개로 제구력은 썩 좋지 않았다. 위기를 자초한 대신 관리 능력은 돋보였다. 오승환은 경기 후 지역 신문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패치와 인터뷰에서 “내가 야구를 하면서 처음 배운 것, 바로 볼넷을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단순히 스트라이크 존이나 심판 성향을 배우는 것보다 임기응변으로 대처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스트라이크 존을 새로 익히기에는 조금 늦었다. 모든 게 새로운 것들이라 일일이 적응하기보다는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이고, 내가 잘했던 게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돌직구’ 하나로 한국과 일본을 평정한 오승환은 지난 1월 ‘1+1년’ 최대 1,100만달러(약 132억5,000만원)에 세인트루이스와 계약하면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시범경기 9경기에서 9⅔이닝을 던져 평균자책점 1.86의 빼어난 성적을 거두며 팀의 핵심 불펜으로 합격점을 받았다. 마이크 매시니(46) 세인트루이스 감독은 “오승환이 위기를 맞았지만 잘 던져줬다”고 칭찬했다.
세인트루이스의 개막전 상대 피츠버그는 강정호(29)가 속한 팀이지만 강정호는 지난 시즌 무릎 부상의 여파로 15일짜리 부상자명단에 오른 채로 개막전을 맞이했다. 경기는 피츠버그의 1-4 승리로 끝났다.
한편 이어 열린 경기에서는 토론토가 탬파베이를 5-3으로, 캔자스시티는 뉴욕 메츠를 4-3으로 각각 꺾고 서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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