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대표님. 지면으로 이렇게 인사드립니다.
지난 주말 동안 호남, 제주, 서울을 종횡무진 누비는 김 대표님을 보고 놀랐습니다. 십여 년 내지 십여 년 젊은 다른 당 대표들을 능가하는 이동거리였습니다. 후보들 로고송에 맞춰 율동하는 모습도 조금은 어색하지만 봐 줄만 했습니다. 다른 당 대표들은 엄두도 못내는 파란가발까지 쓰고 망가지는 모습도 좋았습니다.
교섭단체를 꾸린 정당 대표 중 유일하게 당대표직과 단독 선대위원장직을 겸하고 있지, 비례대표 2번을 달았지, 게다가 이렇게 직접 열심히 뛰고 계시지. 더불어민주당의 이번 총선은 명실상부하게 ‘김종인의 선거’라고 부를 만 합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김 대표님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는 지 좀 의심스럽습니다. 만약 김 대표님 의중대로 돌아가고 있다면, 그 의중이 뭔가 현실과 안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마 김 대표님은 이번 총선 전략을 삼단계로 꾸려놓았던 것 같습니다. 1단계는 더불어민주당을 확실히 장악해 당의 컬러를 바꾼다. 2단계는 국민의당과 안철수 대표를 흔들고 무력화시켜 사실상의 여야 일대일 구도를 만든다. 3단계는 1, 2단계의 기반 위에서 경제실정론을 전면화시켜 여당에 승리를 거둔다.
누가 봐도 아주 논리적이고 매끈한 전략입니다. 1단계는 성공적이었습니다. 필리버스터 정국을 마무리 지으면서 2단계로 국면을 전환하면서 전단계가 더 완벽해졌고 2단계도 거의 성사되는 듯 했습니다. 신생 국민의당은 최대 위기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아시는 대로입니다. 위기에 처했던 국민의당에선 오히려 안철수 대표의 구심력이 강해졌습니다. 국민의당 내 연대파들은 순식간에 힘을 잃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연대는 필요 없다, 통합뿐이다, 안철수 빼고 와도 다 받아줄 수 있다”는 김 대표님의 발언이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안 대표를 도와 준거죠. 그리고 오히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컷오프, 비례대표 순위 논란, 광주 전략 공천 문제가 불거져 1단계의 성과도 흔들렸습니다.
1, 2단계가 흔들리니 아직까지도 3단계에 별로 힘이 실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주부터 박근혜 정부에 공세를 집중하겠다고 밝혔습니다만, 김 대표님은 1, 2단계에 묶여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국민의당과 안철수 대표에게 계속 맹공을 퍼붓는 것, 그건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김 대표님이 “지지자들이 반겨주는 것에 심취되면 정치인으로 판단 미스를 하는 것”이라고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해 모난 발언을 하고, 뜬금없이 문 전 대표 대선 불출마 선언을 촉구한 후보를 질책하기는커녕 "그런 소리 하는 사람 많다, 광주나 호남의 실정을 생각하면 그런 얘기하는 사람 있는데”라는 반응을 보인 것, 이런 건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이라도 1단계를 다져야 한다는 생각인가요.
물론 김 대표님 심정이 이해 가는 면도 있습니다. 1, 2단계를 잘 밟았으면 ‘지역별 후보 단일화’로 골머리를 썩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3단계에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너무나 아쉽겠죠.
하지만 말입니다. 선거를 일주일 남짓 남긴 지금 상황에서 김 대표님께서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것보다 안철수 대표나 문재인 전 대표를 비판하는 발언이 더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총선 결과가 야권에 안 좋게 나온다면, 안철수 대표나 문재인 전 대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일단 접어두시는 게 어떨가요.
늦었다 싶더라도, 실제로 좀 늦은 것 같습니다만, 이젠 3단계에 총력을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김 대표님께서 제일 좋아하는 별명이 ‘경제 할배’라고 들었습니다. 아마 야당 지지자들이 김 대표님께 기대하는 역할도 ‘경제 할배’일 겁니다.
요즘 일교차가 심합니다. 남은 선거기간 강건하시고 좋은 성과 거두시길 바랍니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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