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못지않게 2016년 미국 대선에서는 정치자금 투명성도 최악인 것으로 분석됐다. 주요 기업의 로비성 기부가 급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갑부(甲富)들이 ‘유령 회사’로 신분을 감춰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사례가 성행하고 있다.
3일 미국 연방선거위원회(FEC)와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대선 경선이 시작된 지난해 여름 이후 올 1월말까지 대선 후보를 외곽에서 지원하는 슈퍼팩(Super PACㆍ정치자금위원회)에 기부된 총 5억4,900만달러(6,300억원)를 분석한 결과, 기업 기부금이 6,800만달러(780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2012년 대선의 기업 자금비율(10%)보다 20% 나 증가한 수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유령회사’를 통한 기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델라웨어 주에서 설립된 유한책임회사(LLC)를 통한 정치자금 기부가 크게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델라웨어 주는 미국 50개 주에서 기업 설립에 따른 정보공개 수준이 가장 낮다. 이 곳에서 기업을 만들면 장부만으로는 소유주가 누군지 알 수 없다.
실제로 지난해 여름 델라웨어에 설립된 ‘트레드 스탠더드’라는 유한회사가 1주일 만에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에게 15만달러를 기부했고, ‘데코 서비스’라는 회사는 생긴 지 2주일 만에 25만달러를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에게 줬다. 대선주자는 아니지만 뉴저지 주지사 도전을 꿈꾸는 스티븐 풀롭 저지시티 시장에게는 ‘퍼스트 홀딩스’라는 델라웨어 주 신생기업이 100만달러를 기부, 그 출처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선거개혁 시민운동가인 발레리 마틴은 “지문을 남기지 않고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람들의 실체와 미국 선거제도의 핵심 문제가 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한편 ‘유령회사’ 자금출처 조사에 반대, FEC를 식물 위원회로 전락시켰던 공화당 소속 위원들이 최근 입장을 바꿀 조짐을 보여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워싱턴 주변에서는 트럼프나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보다는 민주당 후보가 유력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진영으로의 ‘유령회사’기부 가능성이 높기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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