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롤링 스톤즈가 쿠바 땅을 밟았다. 쿠바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 감동 어린 역사의 현장에서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 연간 약 1,000만명의 미국인이 쿠바를 방문할 거란 예상이 쏟아졌다. 쿠바 관광 산업에 잭팟이 터진 셈이다. 그렇다면 다음은? 이대로 관광의 성지로 ‘전락’해버리면 어쩐다? 빈티지 건물을 허물고 체인 호텔과 스타벅스가 그 자리를 대신하진 않을까? 벽마다 도배된 그 많던 혁명 슬로건도 몽땅 사라지는 건 아닐까? 거리의 낭만, ‘올드카’는 관광용으로만 남지 않을까? 쿠바는 더 늦기 전에 가야 할 지구상의 가장 첫번째 여행지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쿠바다운 여행지 5곳을 소개한다.
①쿠바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만 모아놓은 곳, 트리니다드(Trinidad)
자, 1850년대로 가는 타임머신에 탑승한다. “따가닥 따가닥” 조약돌을 밟는 말발굽 소리에 잠에서 깨고, “빵이요(El pan)! 빵 사세요!” 빵 장수의 목청에 귀가 간지럽다. 팔레트의 물감을 죄다 풀어놓은 파스텔톤 집과 시간의 때가 켜켜이 쌓인 콜로니얼(식민지시대) 건축물. 그 사이사이 골목 산책은 흐드러지게 핀 차코니아 꽃나무 아래로 이어진다. 아, 19세기로 유괴당한 동심의 세계여라! 바람만 불어도 웃음이 자지러지는 낙천적인 쿠바인이 바로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지난 1988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②우린 아무 것도 아니었을까, 카요 후티아스(Cayo Jutias)
변변한 인상을 주지 않는 피나르 델 리오(Pinar del Rio)에서 방점을 찍는 무결점 해변. 카요 후티아스에선 하늘과 나, 혹은 바다와 나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이곳에서 뭔가를 해야 한다면 걸어봤자 3km의 백사장에 맨발이 사로잡히거나, 독식 중인 딱 한군데의 레스토랑에서 쿠바 리브레(럼을 베이스로 만든 칵테일)를 들이키는 일뿐. 밀물도 썰물도 사라진 온천 같은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있노라면, 이대로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닐까 하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쥐구멍으로 숨어버리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이곳으로 진격할 것.
③원초적인 것보다 더 원초적인, 비날레스(Vinales)
‘옛날 옛적에…’를 모든 이야기에 서두로 둔 21세기 ‘날 것’의 마을. 1억년 전 석회암으로 뒤덮인 바닷속 지대가 낙타 등처럼 솟아오른 전설의 계곡이 실제로 존재한다. 태곳적 아름다움은 짙은 녹음에 포위된 단층집의 ‘깡촌’으로도 이어진다. 야심작이라면 역시 예술혼의 담뱃잎 농장. 전 세계 마초가 피우는 최고급 시가는 대부분 이곳에서 탄생한다. 물질문명 시대와 제대로 이별한 쿠바의 클래식한 멋에 빠져볼 것. 뉴욕타임스의 ‘2016년 추천여행지 10선’에 선정되었으니, 짐 꾸리는데 모터를 달 필요가 더 생긴 곳이다.
④거지 옷을 입은 왕자, 산티아고 데 쿠바(Santiago de Cuba)
어느 가이드북에선 쿠바를 ‘거지 옷을 입은 왕자’ 같다고 비유했다. 쿠바 제2의 도시가 딱 그렇다. 그만큼 야누스의 얼굴을 지녔다. 겉으론 불쾌지수가 높을 일이 많다. 아바나만큼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동네 ‘흑형’과의 마찰은 불가피하며, 중앙공원에 앉아 있으면 매연 탓에 급성 폐렴을 얻을지도 모른다. 반면,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소속 뮤지션을 배출한 문화적 뿌리를 자랑하듯 대낮에도 노상 댄스의 황홀경을 맛본다. 이곳처럼 자연과 도시, 해양의 삼중주를 탑재한 도시는 쿠바 어디에도 없다. 결국 호불호가 갈린다. 위험하면서도 낭만적이다.
[영상]멀미 나는 올드카로의 초대. “Take a ride!”
[영상] Couple on fire! 시내에서 보통 사람이 추는 노상 커플 댄스.
⑤소박한 어촌 마을의 역습, 히바라(Gibara)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곳에 닻을 내리자마자 말했다. “인간이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땅이로구나.” 쿠바 속 쿠바, 히바라다. 쿠바에서 긴급 격리된 듯한 이곳은 그 흔한 혁명 슬로건도, 인터넷도, 히네테로(외국인 상대의 ‘삐끼’)도 없다. 올드카 대신 투박한 마차가 모래 바람을 일으키고, 바람과 파도에 따라 야자수가 요염하게 춤을 춘다. 두 차례에 걸친 허리케인이 이곳을 쓸어버린 후 소박하고 담백한 멋만 남았다. 매년 4월이면 고요한 히바라도 무도회장으로 돌변한다. 필름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그보단 애프터 파티가 끝내준다는 소문이 있다.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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