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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는 끝나지 않았다” 성찰과 교감이 변화 움틔우다

입력
2016.04.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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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부터 매주 금요일 6시

도쿄 의사당 앞 자유발언대 열려

학생ㆍ직장인 등 각계각층 참여

“미래 세대를 위해 원전 막아야”

거침없는 주장… 진지한 경청…

풀뿌리 운동으로 세상 바꿔가

후쿠시마 사고 5주기를 맞은 지난 3월 11일 도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자유발언대 현장에 모인 시민들이 원전 재 가동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프리랜서 기자 pe.deletree@gmail.com
후쿠시마 사고 5주기를 맞은 지난 3월 11일 도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자유발언대 현장에 모인 시민들이 원전 재 가동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프리랜서 기자 pe.deletree@gmail.com

pe.deletree@gmail.com

“제가 40년 만에 집회에 나왔습니다. 5년 전 오늘도 많이 추웠지요. 그때 일본을 바꿨어야 했는데, 아직 더디지만 저는 바뀌었습니다. 매주 국회 앞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발언하는 이 자리가 (사회 변화에) 큰 도움이 됐죠. 젊은이들이 정치를 바꿀 겁니다.”(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씨)

후쿠시마 사고 5주년인 지난 3월 11일 저녁 도쿄 국회의사당 앞. 2012년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6시면 열리는 자유발언대가 187회를 맞았다. 본래 수도권반원전연합이 총리관저 앞에서 시작한 자리지만 횟수를 거듭하면서 이슈에 관계없이 자기 이야기를 하려는 시민들이 늘어 국회 앞까지 확장됐다. 5년 전 사고 당일과 겹친 이날 발언대는 평소보다 더 많은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주최측에 따르면 이 시간 국회와 총리관저, 도쿄전력 등에 모인 집회 인원은 약 6,000명. 한국은 물론, 일본 내 다른 대규모 집회에 비하면 초라해 보이는 숫자지만 단체 소속이 아니라 거의 모두 개인 자격으로 참가한 사람들이란 점에서 결코 적은 인원이 아니다. 주제와 참가자도 다양해서 정권 비판 내용으로 개사한 노래를 부르는 노년 합창단도 있고, 3ㆍ11 숫자 모양으로 초를 켜는 행사를 여는 다국적 젊은이들도 있었다.

현장에서는 막 퇴근해 온 것으로 보이는 양복 차림의 직장인과 학생, 깔끔한 옷 매무새의 노년 여성 등 각계각층 사람들이 혼자 혹은 소규모로 발언들을 경청하고 있었다. 이들은 보도를 이용하는 다른 시민들을 위해 자진해서 길을 터놓을 만큼 차분했다. 수많은 인파가 모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고, 그렇지만 다른 의견이 있으면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을 던졌다.

“사고는 끝나지 않았어요. 제염이 제대로 안 된 상황에서 방사선 수치가 높은 땅에 아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 원전 재가동만은 막아야 합니다.” 후쿠시마 어머니 모임인 ‘다라치네’의 스즈키 가오루 사무국장이 자리를 열었다. 이어 야당인사들의 정권 비판이 이어졌다. 이들은 “오염수가 계속해서 바다로 나오고 있다”(생활당) “산과 바다를 빼앗겼고, 사람들은 추억과 관계들을 잃었다”(공산당) “현재 재생에너지가 생산하는 전력은 원전 18기와 맞먹는다. 탈원전 가능성이 있다”(민주당)며 야당 연합을 지지해줄 것을 한 목소리로 호소했다.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조치대 나가노 고이치 교수는 “야당을 재활용하자. 제대로 못하는 부분이 많지만 우리가 똑바로 하라고 감시하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신과 의사 가야마 리카씨는 “2010년 도쿄전력이 낸 자료에는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주민들의 정신적 고통이 마음의 문제이므로 생각을 바꾸면 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마음의 병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며 심각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피난민들의 가정불화는 여전히 심하고, 피난지역 공무원들은 갈수록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전 경제산업성 관료 출신인 고가 시게아키씨는 “재직 당시 3ㆍ11이 벌어졌는데 부처에서는 도쿄전력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전력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런 발언을 하지 말라는 주의만 돌아왔다”고 털어놓았다.

후쿠시마 사고 피해자들의 증언도 빠지지 않았다. 후쿠시마에서 2.4㎞ 떨어진 후타바 마을에 살았던 가메야 유키코씨는 “내년 3월 이후부터는 가설주택에 살더라도 월세를 내야 한다니 황당하다”며 “지옥 같은 삶 속에서 후쿠시마 관련 방송을 차마 쳐다볼 수도 없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나 후쿠시마원전소송단 사토 카즈요시 부단장은 “고소한 지 4년 만인 올해 드디어 도쿄전력 경영진 3명이 강제 기소됐다. 앞으로 최고재판소까지 10년 정도 걸린다고 하니 이를 ‘10년 전쟁’이라 생각하고 끝까지 싸울 참이다”라며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자유발언대는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로도 이어졌다. 1970년대 전공투 이후 40년 만에 나타난 ‘20대 운동권’이라 불리는 ‘실즈’ (SEALDsㆍ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행동) 소속 스와하라 다케시 학생은 “3ㆍ11 전에는 고향인 규슈에 원전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된 것도 얼떨떨하지만 배우러 왔다. 이렇게 거리로 나와 함께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르포작가 가마타 사토시씨는 한층 진지했다. “3ㆍ11 이전만 해도 1만 명이 모이는 집회가 거의 없었지만 이젠 다릅니다. 오쓰 지법 재판관들은 용기를 내 다카하마 원전 가동 중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고, 후쿠시마 주민들도 도쿄에서 대규모 집회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풀뿌리 운동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도쿄= 김혜경 프리랜서기자 salutkye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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