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4월 4일
천문학자 조경철이 ‘아폴로 박사’라는 동화적인 애칭을 얻은 것은 1969년 7월 21일 미국 항공우주국 달 착륙선 아폴로 11호의 발사와 귀환 중계방송에 출연하면서부터였다. 살기 바쁜데 무슨 우주선… 하던 때였고, 박사도 요즘 같지 않던 시절이었다. 방송에서 그는 미국 방송을 순차통역까지 하면서, 아이처럼 흥분해 달 착륙의 감격과 부러움을 전했다. 루이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딛던 순간에는 의자가 뒤로 쓰러지기도 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그를 통해 그렇게 과학의 우주와 처음 대면했다.
그는 1929년 4월 4일 평북 선천에서 태어났다. 47년 김일성종합대학 광산공학과를 다니던 중 월남, 연세대 전신인 연희대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6ㆍ25전쟁에 연락장교와 전투부대 지휘관으로 복무했고, 금화지구 전투에선 화랑무공훈장도 탔다. 전투 중 총상을 입은 뒤 육사에서 물리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미국 터스큘럼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뒤 대학원에 갓 진학했을 무렵 스승의 권유로 첫 정을 준 천문학으로 전공을 바꿨고, 62년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천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이 소련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 성공(1957)으로 몸달아 있던 때였다.
자서전에 따르면 그는 하버드대 천체물리연구소 등 내로라하는 연구소 스카우트 제의 중에 워싱턴 미 해군천문대(62~65년)를 택했다. 군은 그를 붙잡기 위해 단 일주일 만에 영주권을 발급해주었다고 한다. 몇 편의 논문을 미 천체물리학회지에 게재해 주목 받기도 했다. 65~67년 NASA의 메릴랜드 고다드우주센터에서 일했고, 메릴랜드 대학 교수(67~69년)가 됐다. 그가 “조국의 부름을 받고” 정부 해외유치과학자 1호로 귀국한 건 아폴로 발사 직전인 68년 8월이었다. 연세대-경희대 교수(부총장) 여러 연구소와 교육기관장을 역임했고, 70년대 말 이후 정치권 진출을 꾀하기도 했다.
그는 177권의 책 등 과도하게 많은 대중적 글을 썼고, 강연ㆍ방송 등에 수도 없이 출연했다. 그런 그를 우습게 본 학자들도 있었다지만, 제대로 된 천체망원경 하나 없던 불모지 조국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어쩌면 그것뿐이었을지 모른다. 2010년 3월 6일 별세.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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