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숙 ‘사이렌의 침묵’ 亞 초연
음색ㆍ질감에 집중한 연주 신선
만토바니 ‘원스 어폰…’도 연주
“유명한 오디세우스, 영광의 아카이아, 쉬기 위해 당신의 배를 가져와 우리의 음성을 들으세요. 그의 어두운 배 안에서 우리의 입술에서 달콤한 음성을 들어야 이 섬을 지나 배를 저을 수 있어요.”
3일 오후 경남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울려 퍼진 ‘사이렌의 목소리’는 아름답기보다 기괴하고 독특했다. 그리고 매혹적이었다. 뱃사람을 노래로 유혹해 잡아먹는 반은 사람, 반은 새인 그리스 신화 속 요정 사이렌은 이제 더 강력한 무기, 침묵으로 호메로스를 유혹한다. 작곡가 진은숙이 카프카의 동명 소설을 모티프로 만든 16분짜리 모노드라마 ‘사이렌의 침묵’은 2014년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베를린필하모닉의 교황’ 사이먼 래틀의 지휘, 소프라노 바바라 하니건의 노래로 초연됐고, 올해 통영국제음악제 폐막공연에서 아시아 초연됐다.
이번 공연에서 소프라노 마리솔 몬탈보는 무대 뒤에서 호메로스의 시를 노래했다. 높은 시음에서 시작해 낮은 음에서 내려갔다가 다시 되돌아가는 목소리는 천천히 범위를 늘리는 추 운동 같았다. 트레몰로(연주에서 음이나 화음을 빨리 규칙적으로 떨리는 듯이 되풀이하는 주법)로 시작해 점점 세게 요동치는 바이올린과 5대의 퍼커션은 이 기묘한 목소리를 감쌌다. 몬탈보가 무대 위에 올라 호메로스의 노래를 부르고, 이어 짧은 단위로 이어진 연주가 반복됐다.
진은숙은 공연 전 한국일보와 만나 “바바라 하니건의 음색에 맞는 작품으로 ‘사이렌’을 모티프로 한 곡을 쓰기로 하고 관련 문학작품을 찾았다. 이 문학작품들을 한 곳에 넣은 곡”이라고 말했다. 저 짧은 단위의 반복된 연주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모티프로 한 부분”이다. “문학작품의 호흡이 있으면 그 호흡에 맞춰서 곡을 써요. 율리시즈에서 사이렌 언급 부분은 이야기 전개를 한 장으로 압축해 리드미컬하죠. 발성학적으로도 굉장히 음악적입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12장과 율리시즈 11장 초반 텍스트를 합친 가사는 사이렌이 항해사를 노래로 유혹하는 이야기(오디세이), 아일랜드 여성 바텐더로 변신한 사이렌이 남자들에게 술을 마시도록 유혹하는 이야기(율리시즈)로 구성된다. 율리시즈를 모티프로 한 과장되고 단편적인 음의 반복은 곡 중반 다시 호메로스의 시를 빌어 서정적인 음으로 바뀌었다.
통영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크리스토프 에센바흐는 “진은숙의 곡은 다층적이다. 서정적이고, 우스꽝스러우며, 서사시적이다. 그녀의 곡은 간격을 두고 빠르게 변화한다. 매우 흥미진진하고, 무드가 계속 변하기에 소프라노가 노래하기 어렵다”고 소개했다. 멜로디나 리듬보다 악기와 목소리가 빚어내는 음색, 질감에 집중한 연주는 깨끗하면서도 잔향 풍부한 연주홀과 맞물려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다.
폐막공연에서는 ‘사이렌의 침묵’ 외에도 만토바니의 첼로 협주곡 ‘원스 어폰 어 타임’, 버르토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도 연주됐다. 에센바흐는 “작곡가 진은숙이 이곳에 계셔서 디테일한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곡의 방향을 잘못 잡고 있었지만, 연필이 깎이듯 다듬어졌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통영=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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