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조호건축 소장

70년대 양옥 리모델링 ‘기하학의 집’
주택가 속 다스베이더 가면 연상케
기와+검은 철판, 과거ㆍ현재 접합
서울 강남구 논현동 부유층 주택가에 자리잡은 ‘기하학의집’. 젊은 CF 감독이 사들인 오래된 주택을 이정훈 조호건축 소장이 리모델링했다. ⓒ남궁선

이라크 태생의 영국 건축가이자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가 31일 심장마비로 숨졌다. 그와 서울의 인연은 짧지만 강렬했다. 2014년 3월 DDP 개관 때 방한한 그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DDP가 동대문 주변과 건물이 잘 어우러지지 않는다는 항간의 지적을 꺼내자 “그럼 여기가 계속 슬럼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말이냐”고 거침없이 되받아 쳤다. 그의 말은 격론을 낳았고, ‘장소의 역사성을 무시한 흉물’이란 비판과 ‘시간이 지나면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을 것’이란 기대가 충돌했다.

하디드는 떠났지만 그의 반문은 계속 우리 곁에 남아 갈수록 몸피를 부풀리고 있다. 동대문, 넓게는 서울이란 도시에 어울리는 건축은 과연 뭘까. 수십 년간 무계획적으로 짓고 또 지은 땅 위에 다음 세대를 내다볼 건물을 짓는다면 그건 어떤 형태여야 할까.

1970년대 ‘불란서 주택’의 미래적 변신

조호건축 이정훈(41) 소장은 성균관대에서 건축학과 철학을 전공한 뒤 프랑스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해 2009년 조호건축을 설립했다. 현재 국내의 젊은 건축가 중 가장 이질적인 건물을 짓는 그가 과거 자하 하디드의 설계사무소에서 1여 년간 일했다는 것은 기묘한 우연이다. 900개의 반투명 플라스틱 패널을 붙여 만든 용인 죽전의 헤르마 주차빌딩부터 1만장의 벽돌을 일일이 손으로 쌓은 주택 커빙하우스까지 이정훈의 건축은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서울의 풍경에 과감하게 ‘다음’을 제시한다.

기하학의 집 외관. 평범한 붉은 벽돌집 위에 블랙 스테인리스로 만든 외피를 씌워 리모델링했다. ⓒ남궁선

“서울은 지금 트랜스폼의 단계에 있습니다. 70, 80년대 건설붐을 타고 부를 축적한 이들이 이제 자식 세대에게 그것을 물려주고 있어요. 아파트의 부가가치 창출이 끝난 지금, 그 자녀들이 원하는 것은 아파트도 아니고 오래된 구식 주택도 당연히 아닙니다. 옛 것에 요즘 것을 접합하는 일은 지금 한국 건축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예요.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겁니다.”

이정훈 소장이 설계한 강남구 논현동 ‘기하학의 집’ 은 언덕을 따라 대저택들이 늘어선 전형적인 옛 부유층 주택가에 있다. 근처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다. 오래된 주택들 사이에서 다스베이더(영화 ‘스타워즈’의 악인)의 가면처럼 까만 철제 외관으로 마감한 기하학의 집은 단연 눈에 띈다. 원래 마당 딸린 2층 주택이었던 것을 한 젊은 CF 감독이 사들여 이 소장에게 사무용 건물로 리모델링을 의뢰한 게 2014년 8월이다.

“(건축주가)헤르마 주차빌딩을 보고 거기서 CF를 찍고 싶단 생각을 했답니다. 건물을 매입하자마자 저에게 전화를 걸어 왔어요.” 건축주의 요구는 딱 하나였다. ‘극단적으로 재료의 감성이 돋보이는 리모델링을 해달라’. 이 소장은 이게 본인이 내내 해온 작업과 같은 맥락인 걸 알면서도 머리를 부여잡을 수 밖에 없었다. 재료는 둘째 치고 리모델링 작업이니 일단 뭘 남기고 없앨 지부터 결정해야 했다. 집 내ㆍ외부를 살펴보니 전형적인 ‘불란서 주택’이었다. “70년대 초가집을 개량하면서 대량으로 보급된 양옥 주택을 ‘불란서 주택’이라고 불러요. 콘크리트로 만든 박공지붕에 기와를 얹은 게 특징인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집을 생각하면 돼요.”

집은 불란서 주택 중에서도 고급에 속했다. 벽난로, 아치 형태로 만든 고풍스런 문틀, 부드럽게 휘어져 올라가는 황동장식의 계단 등. 수십 년 전 사장 아빠를 둔 친구 집에 놀러 간 초등학생이 느꼈을 법한 위화감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 당시에도 대충 지은 집은 아니었던 거죠. 한때 교통부 장관이 살았던 집이라고 합니다. 처마와 계단, 마루에 사용된 목재는 이젠 어디 가서 구할 수도 없는 앤틱이 됐어요. 내부는 꼭 필요한 부분만 고치고 외관을 바꾸는 데 주력하기로 했습니다.”

기하학의 집 내부. 오래된 천장을 터서 낡은 벽돌을 하얗게 칠한 것 외에 창호, 바닥 등 본래의 것들은 거의 대부분 그대로 유지했다. 현재는 한 의류회사가 입주해 있다. ⓒ남궁선
故 자하 하디드 사무소서 1년 일해
DDP 사태, 슬프지만 겪어야 할 일
사람들에 ‘서울의 건축’ 화두 던져
혼돈의 건축, 새 질서 만들어야
기왓돌과 메탈의 공존 ”과거ㆍ현재의 어우러짐”

집의 외관을 이루는 것들 중 이 소장이 주목한 것은 기와다. 한 조각 한 조각의 기와가 맞물려 빚은 리드미컬한 선이 그는 “너무 강렬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작은 곡선 수 천 개가 모여 물결을 이루고 있는 거잖아요. 저 강한 리듬에 잡아 먹히지 않으려면 웬만한 선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블랙 스테인리스를 레이저로 커팅해 마름모와 삼각형 패널을 제작한 뒤 그 위에 원, 네모, 마름모, 육각형 등 다양한 형태의 구멍을 뚫었다. 가뜩이나 다루기 힘든 블랙 스테인리스 패널을 겹치는 것 없이 각기 다른 모양으로 530개나 만들고 20만개의 구멍을 뚫은 뒤 다시 5㎜ 미만 오차로 접합하는 고난이도의 작업 과정에서 현장 소장이 두 번이나 도망갔고 4, 5개월 예정이던 공사는 2015년 봄이 돼서야 끝났다. 완성된 외관은 부리부리하면서도 정적이다. 뾰족뾰족하게 접합된 검은 철판은 기와의 리듬에 지지 않고 존재감을 뽐낸다. “기와가 과거의 음악이라면 블랙 스테인리스는 요즘 노래예요. 기와의 곡선과 철판의 직선, 기왓돌의 전통적인 느낌과 메탈의 현대적인 느낌이 서로 다른 리듬을 만들며 어우러지길 바랐어요.”

기하학적 형태로 커팅해 접합한 블랙 스테인리스. 530개의 패널 중 겹치는 모양이 하나도 없다. ⓒ남궁선

담은 베이지색 대리석으로 담백하게 만들었다. 집의 캐릭터가 너무 강해진 것을 의식해, 담만큼은 어느 정도 주변 건물에 녹아 드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돌담이 한 덩어리가 아니라 여러 개의 돌이 적층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일일이 V-컷팅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또 한 번 현장 소장이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왜 모든 작업을 그렇게 힘들게 하냐고 묻는데, 저는 수공예만의 아우라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성장의 시기엔 규모와 속도가 중요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 젊은 세대는 건국 이래 가장 세련된 취향을 지녔고 이는 한국 음악이 해외에서 얻는 인기로 상당부분 입증됐죠. 건축에서도 이런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오늘날 서울의 건축을 “카오스”라고 말했다. “DDP에 쏟아진 어떤 비판들은 일리가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건물을 지을 때 우리의 전통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면서 짓는지도 생각해봐야겠죠. 새로 들어서는 건물이 기존 질서에 어우러져야 한다고 말할 때 저는 그 질서가 뭐냐고 묻고 싶습니다. 지금 서울엔 순응할 가치가 있는 건축적 맥락이라는 게 없어요.”

마당 한쪽을 파서 만든 주차장. 지하는 용적률에 포함되지 않는 것을 이용, 나중에 건물이 하나 더 필요해질 경우 여기에 지을 수 있도록 용적률을 비축해둔 셈이다. ⓒ남궁선

이 소장은 하디드 사무실에서 일할 당시 그와 직접 마주칠 일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떠들썩했던 DDP 사태에 대해 그는 “슬픈 일”이면서 “반드시 겪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이란 도시엔 내세울만한 건축적 질서가 없었고, 한국 건축의 정체성을 대표한다고 말할 건축가도 없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외국의 유명 건축가를 데려올 수 밖에 없었던 거죠. 그러나 논란이 뜨거웠던 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몰렸고 전 이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 이슈메이커가 던진 돌멩이로 인해 비로소 사람들이 한국의 건축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DDP는 이미 지어졌고 그걸 설계한 건축가도 세상을 떠났어요. 우리가 할 일은 이제 그것과 함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일입니다.”

1층 높이에서 본 모습. 원래는 왼쪽의 흰색 루버로 만든 주차장까지 다 정원이었다. ⓒ남궁선
조호건축 이정훈 소장. ⓒ남궁선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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