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는 종종 ‘색깔전쟁’에 비유됩니다. 각 정당이 내건 색(色)은 추구하는 가치, 이념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당심(黨心)만으로 승패가 갈리는 지역에선 인물, 정책보다 색(色)이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4ㆍ13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뛰는 후보들은 무슨 색을 택했을까요.
새누리당 공천관리위로부터‘부작위 컷오프(공천배제)’당한 유승민(대구 동을) 의원과 비슷한 처지인 권은희(대구 북갑)?류성걸(대구 동갑)의원, 조해진(경남 밀양ㆍ의령ㆍ함안ㆍ창녕) 의원은 흰색 점퍼를 입었습니다. 이에 더해 또 다른 컷오프 당사자인 임태희(경기 성남분당을)?강승규(서울 마포갑)?조진형(인천 부평갑) 전 의원도 유 의원과의 연대를 선언하며 흰옷을 입는 등‘백색부대’에 합류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막말 파문’으로 컷오프돼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친박 실세 윤상현(인천 남을) 의원도 흰색을 입었다는 점입니다. 탈당 이유도, 계파도 다른데 유니폼만 보면 연대한 모양새가 돼 버렸습니다. 독자행보를 하는 주호영(대구 수성을) 의원도 흰옷을 입고 선거전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들이 흰색을 택한 이유는 참 단순합니다. 새누리당(빨강), 더불어민주당(파랑), 국민의당(녹색), 정의당(노랑) 등 기존 정당이 색을 선점해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겁니다. 대구 중ㆍ남구 무소속 후보인 박창달 전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까지 녹색 옷을 입었다가 국민의당과 겹치는 바람에 흰옷으로 갈아입기도 했습니다. 흰색을 가장 먼저 고른 쪽은 유 의원인데요. 색깔을 고민하던 참모들이 무작정 쇼핑을 갔다가 밝고 깨끗함을 강조하기엔 흰색이 안성맞춤이라고 판단, 그 자리에서 정했다는 후문입니다.
하지만 후보의 정체성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듯, 새로운 색에 적응하는 일도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18대 총선에서 친이계의 학살로 출범한 친박연대는 당시 한나라당의 상징색이었던 파란색을 고수하며‘공천 희생자’임을 부각시켰습니다. 유 의원도 지난달 30일 캠프 개소식에서 “빨간 점퍼가 흰색으로 바뀌어서 값이 좀 들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습니다.
물론 이번에도 빨간색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후보가 없는 건 아닙니다. ‘3ㆍ15 공천학살’에 반발, 무소속으로 서울 은평을에 출마한 친이계 좌장, 이재오 의원은 요즘 빨간 점퍼에다 기호 8번을 달고 지역을 누비며 선거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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