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도다리쑥국을 먹으러 갔다가 식당 벽에 걸린 액자 속, 눈에 익은 필체를 보았다. “서울 도심에서 통영의 봄맛을 만끽하고 감개가 무량합니다.” 2009년 봄날 그곳을 방문했던 박완서 선생이 남기고 간 글이었다. 이경자 선생의 “먹는 일이 사랑이란 걸 알았습니다”라는 문장도 액자 속에 담겨 벽에 걸려 있었다. 같은 날 방문한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은 같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했던 것 같다. 어느 해 봄, 박완서 선생은 우리 집에 와서 점심을 들고 저녁 무렵까지 추억에 잠겨 있다 돌아갔다. 딱 우리 집처럼 작았던 집에서 살았던 신혼 때의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었다. 그때 그분은 내가 준비한 갖은 나물 반찬 중에서 콩나물볶음이 가장 맛있다고 했다. 나 역시 구리 아치울에 있는 그분의 집에 몇 번 간 적이 있는데, 두세 번 콩나물 반찬을 들고 갔다. 콩나물을 좋아하는 것만 보고도 나는 그 분의 식성과 체질을 대충 짐작했고, 그건 대충 맞았다. 그분이 한 말 중에서 각인된 듯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선생이 말년까지 살던 아치울의 한 나이 든 여자가 바람이 난 이야기를 하던 중에 나온 말이다. 선생은 그 여자의 아버지가 딸이 “그놈과 배가 맞았다”고 했다면서, 표현이 흉하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선생의 표정과 표현의 외설스러움 때문에 듣고 있던 사람들이 박장대소했다. 세월은 그 생생한 기억들을 개울 속 징검다리처럼 들어올리며 오직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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