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빠진 엄마들 36년 진료
세 아들 길러낸 정신의 바바라 아몬드
지난달 6일 별세
경험 상담사례 엮어 책 펴내
불가능한 ‘완벽한 모성’ 강요사회 비판
“그건 결코 반성할 일이 아니다”
직장, 육아 압박 늘어나는 세태
여러 감정 일어나는 게 정상
자녀 망치는 과잉애착 경고도
낯선 이의 ‘가만한’ 미소, 혹은 ‘가만히’ 건네는 손의 온기가 값진 위안이 될 때가 있다. 힘겨운 자리에 혼자 섰거나 그런 기분에 지친 이에게는, 마주서는 것보다 나란히 서서‘가만히’ 같은 곳을 바라봐주는 게 더 고마운 일일지 모른다.(‘가만한 당신’을 연재한 지 2년이 됐고, 그사이 얼추 100명이 여기 머물다 갔다. 그들이 그런 존재였으면 했다.)
바바라 아몬드(Barbara Almond)는 정신분석ㆍ상담 의사로,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원제 ‘The Monster Within: The Hidden Side of Motherhood)’(김진ㆍ김윤창 옮김, 간장 발행)라는 책을 썼다. 책에서 그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 희생…, 뭉뚱그려 ‘모성(Motherhood)’은 무조건 완벽하고 최고여야 한다는 아득한 기준을 부정했다. 끊임없이 ‘모범 어머니’를 찾아 전시하는 사회, 모든 어머니들도 그들을 본받아야 한다고 채찍질하는 사회를 비판했다. 책의 제목처럼, 모성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나란히 있고 모든 어머니는 자식을 진심으로 미워할 때도 있다고 썼다. ‘당신’만 아이를 미워하는 게 아니고, 그게 잘못된 일도 아니고, 한결같이 감싸주는 게 아이에게 좋은 일도 아니라고, 그러니 스스로를 미워하지 말라고 썼다.
실패의 예감과 불안, 실패했거나 하고 있다는 자책과 죄의식에 시달리는 세상 모든 어머니들에게 든든한 ‘어머니’같았던 그가 3월 6일 별세했다. 향년 77세.
작가이자 교수(캘리포니아대 영문학)인 캐럴린 세(Carolyn See)는 2010년 10월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아몬드의 책 서평 첫 줄을 “우선 이 매혹적인 책을 모든 새로운 엄마와 나이든 엄마,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 모든 아이들과 남편들, 아빠와 연인들에게 권한다”고 썼다. “(이 책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거의 아무도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사실: 우리 중 최고의 엄마들조차 때때로 모성이란 것이 요구하는 바에서 비롯된 두려움과 공포, 증오와 역겨움으로 고문당하고, 심지어 아이들을 향한 순전한 살의를 경험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사실 신화화된 모성에 대한 공격은, 아몬드 이전에도 적지 않았다. 본격적인 반박은 아무래도 1960년대 2세대 페미니즘 운동과 더불어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사회 진출의 절박한 요구와 양육의 전적인 책임 사이에서 60년대 여성들은 ‘생물학적 본성으로서의 모성’을 의심하며 사회가 구축한 모성 이데올로기를 비판했고,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알렉산드르 콜론타이가 1920년대부터 제기했던 보육의 사회적 책임을 주장했다. 기성 사회는 그들을 모성 결핍이라고 진단했다. ‘이기적인 여자’라는 손가락질은 너그러운 편이었고, 생물학적ㆍ인격적 결함으로 몰아세우기도 했다. 그 공격의 선봉에는 물론 모성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여성들도 있었다.
행ㆍ불행은 능력의 많고 적음보다 의욕(욕심)의 많고 적음에 더 자주 영향을 받는다. 능력은 결핍일 때 주로 문제가 되지만, 의욕은 과잉일 때 더 자주 말썽을 빚고, 경험으로 판단컨대, 능력은 충분할 때가 드물고 의욕은 적당할 때가 드물다. 그 간극이 커지면 자신도 주변도 불행해진다. 아마 모성이 놓인 자리가 거기일 것이다.
물론 모성만 그런 건 아니다. 사회가 개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능력도 의욕도 다다익선에 맞춰져 있고, ‘모범’에 못 미치는 이들은, 사회의 기준을 내면화한 이들은 하릴없이 자책하고 죽도록 분발한다. 모성이 더 치명적인 것은, (내든 안 내든)사표나 이민 같은 탈출구도 없기 때문이다.
아몬드의 책에 소개된 영국의 심리치료사 로지카 파커(Roszika Parker)도 95년 책 ‘Mother Love/ Mother Hate: The Power of Maternal Ambivalence’에서 어머니의 자녀에 대한 양가감정은 불가피하고 정상적인 일이라고 옹호했다. 파커는 “어머니들이 겪는 진짜 문제는 양가감정 그 자체가 아니라 양가적인 감정들의 부정적인 면에 대한 폭넓고 대중적인 비난에서 비롯되는 죄책감과 불안”이라고 주장했다.
바바라 아몬드는 1938년 6월 6일 미국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났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Irving Rosenthal)는 꽤 큰 보험회사의 임원이고, 어머니(Anne Bernstein)는 교사였다. 그는 맨해튼의 공립 예술고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안티오크 칼리지와 예일 의대(63년)를 나와 정신 분석ㆍ심리 상담 전문의가 됐다. 62년, 24세의 그는 대학서 만난 리처드 아몬드(Richard Almond)와 결혼해 세 아들을 낳았고, 72년 샌프란시스코 팰로 앨토에 병원을 열었다. 그 정도가 알려진 그의 이력이다. 그는 길게 인터뷰한 적도 없고, 남편과 함께 쓴 상담심리 관련 책을 빼면, 따로 글을 발표한 적도 없는 듯하다. 그러다 2000년, 그러니까 36년간 정신 상담 의사로 일한 뒤 무명의 필자로 저 책을 냈다.
그의 책은 세 아이의 엄마인 자신의 경험과 한 세대에 걸친 다양한 임상 사례, 거기에 소설과 영화 등에 등장하는 ‘모성’의 전형적인 양상들을 분석한 글을 보탠 거였다. 그가 보기에, 60년대 이후 40년 동안 여성들이 짊어진 모성 신화의 짐은 더 무거워져 있었다. 당장 자신의 경험이, 직장여성이던 유년시절 어머니에 비해 그러했다고 한다.
시장 말고는 그 어디서도, 아니 노동시장에서 특히 환대 받지 못하는 청년들 입장에서는 선망의 대상일지 모르지만, 아몬드는 일과 ‘어머니 노릇’을 병행하는 게 힘들었다고 한다. 그가 아이들을 낳은 건 20대 중반, 정신과 수련의 과정을 마치기 전이었다. “혹시 (병원) 복귀를 너무 오래 미루다 내 직업적 역할에 자신감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직면하기 어려운 사실이 있었다. 비록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아이들은 많은 주의를 요하면서 사람의 기운을 쪽 빼놓았고, 물론 일 역시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이 종종 짤막한 휴식처럼 느껴졌다. 나는 결국 수련의 근무를 시간제로 바꾸어, 3년짜리 과정을 5년에 끝마치는 방향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그럼에도 일을 할 때면 아이들이 늘 마음에 걸렸다. 내가 정신과 수련의 근무를 시작한 첫날은 2년 6개월 된 내 아들이 유아원에 가는 첫날이기도 했다.”(머리말에서)
그의 환자들, 그러니까 비싼 진료비에 보험혜택도 없는 심리 분석 상담을 받으러 오는 여성들은 대부분 그와 다를 바 없는 중상류층 전문직 종사자였다. “나는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내 여성 환자들 대다수가 자신들의 어머니 노릇 수준이나 어머니이기를 회피하는 데 대한 죄책감과 수치심을 해소하고자 애써왔거나 애쓰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는 심지어 헌신적이고 성실한 어머니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가 될 자신이 없어 ‘합리적인 이유(핑계)’를 찾아 임신을 늦추거나 출산을 늦춘(낙태) 뒤 죄의식을 느끼고, ‘괴물’ 같은 아이를 낳거나, (제대로 못 키워) ‘괴물’을 만들지 모른다고 두려워하고, 좋은 엄마가 아니라고 자책하고,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우울해하고, 거꾸로 자신을 그렇게 몰아붙이는 존재인 아이를 더 미워하고 학대하는 엄마들. 그렇게 안팎으로 단련돼 자신의 배타적 가족이기주의에도 너무 당당해져 버린 여성들. 산후우울증은 한 시기의 예일뿐, 저 증상은 모성의 주체들이 거의 전 생애를 두고 겪는 일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미국의 변호사 겸 작가 에일렛 월드먼(Ayelet Waldman)의 육아일기 ‘나쁜 엄마’(김진아 옮김, 프리뷰)의 첫 장 부제는 ‘나쁜 엄마 선언문’이다. 거기서 월드먼은 달리는 열차에서 어린 딸의 머리를 빗겨주다 비틀거리는 아이에게 심하게 짜증을 내는 한 여성을 향해, 끔찍한 모성 범죄라도 목격한 듯 “부인, 사람들이 모두 보고 있어요!”라고 꾸짖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우리는 보고 있다. 나쁜 엄마를 잡는 경찰은 항상 오렌지급 경계태세를 갖추고 지켜보고 있다.” 물론 그는 자타공인 ‘나쁜 엄마’다. 2005년 뉴욕타임스 에세이에서 “나는 자식보다 남편을 더 사랑한다”고 썼다가 ‘메데이아’의 화신이라도 된 양 여론(특히 엄마들)의 호된 매질을 당하기도 했다. 친지를 상대로 그가 조사한 바 ‘좋은 엄마’는 이런 엄마였다. “아침에 과일을 내오고, 항상 명랑하고, 절대로 소리지르는 법이 없으며, 아무리 신경질이 나고 못마땅한 것이 있어도 그것을 아이들에게 발산하지 않는 여자, 활발하고 사랑스러운 태도로 커뮤니티에 봉사하는 여자, 아이들과 그림 그리기를 함께 하고, 신나게 같이 놀아주는 여자. 그러면서 섹스를 절대로 마다하지 않는 여자.(…) 나와 정반대인 여자.”(16쪽)
그는 “전통적인 모성상의 결정판은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고 “나쁜 엄마를 규정하는 가장 큰 특징은 이기심”이라고 썼다.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단순히 희생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희생해야 하며, 그것에 대해 절대로 후회해서도 안 된다.” 그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일을 포기하고 전업주부로 산 이야기, 유치원에서 나쁜 엄마로 찍혀 따돌림 당한 이야기, 시어머니와의 갈등, 천재인 줄 알았던 아들에게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ADHD) 진단이 내려진 뒤 겪어야 했던 안팎의 시련 등을 소개했다.
모성 신화는 ‘신데렐라’(계모의 이면에는 이상화한 친모가 있다)보다 더 오랜 연원을 지닐 것이다. 그게 유난해진 건 계몽주의 시대, 특히 지난 세기 이후부터였다. 핵가족화로 보육 책임이 부모(거의 어머니)에게 온전히 이전되고, 이혼율이 증가하고 출산율이 저하했다. 앞서 언급했듯, 여성 사회진출과 페미니즘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가정의 붕괴에 대한 위기감이 증폭된 데 따른 가부장 사회의 반작용 탓도 있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어머니 노릇의 여건이 더 어려워짐에 따라 어머니에게 기대되는 것도, 또 어머니가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것도 더 많아진다.(…) 보육의 모든 영역- 수유, 수면, 놀이, 정서적ㆍ지적 발달-에서 완벽주의적 기준이 만연”(아몬드의 책 35쪽)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 베이비붐 세대의 열정이 결합했다. 아동 인권도 날로 중요해졌다. ‘좋은 어머니’에 대한 광적 집착은 모유 수유와 자연분만에 대한 맹목적 숭배, 백신 접종 거부 등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아몬드는 어머니의 불행에 대한 보상 심리가 아이에 대한 과잉 애착으로 전이돼 아이의 자율성ㆍ자립성을 훼손하는 사례를 ‘뱀파이어형 모성’이라고 불렀다.
그는 “우리는 어머니들이 엄청난 압박에 직면한다는 점과 그들이 자식에게 느끼는 폭넓은 감정이 정상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어머니 노릇의 방식이 아주 다양하며, 모든 모자 관계가 각기 고유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유행을 따르지만, 유행을 향한 열정이 자녀 양육의 관행을 상식 밖으로 침해할 경우 크나큰 불행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354쪽)고 썼다. 모성의 어두운 면을 긍정하고, 그 감정을 존중해야 하는 주체는 먼저 어머니 자신이고, 배우자 등 가족이고, 또 사회여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곧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위기 개입ㆍcrisis intervention)’이다. 물론 그의 모든 메시지는 양육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의 온전한 성 평등과 사회제도적양육 환경 개선- 출산 휴가, 낙태 합법화, 좋은 보육ㆍ교육 서비스- 등을 전제한 것일 테다.
아몬드는 숨을 거두기 두 달 전까지 진료를 계속했다. 스탠퍼드 의대에 출강했고, 샌프란시스코 심리분석센터 일을 거들기도 했다. 53년을 해로한 남편 리처드는 ‘SFgate’인터뷰에서 환자들이 아내의 재치 있는 농담을 특히 좋아했다고, 자신은 흉내조차 낼 수 없다고 전했다. 각각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와 성악가였던 부부는 지인들을 초대해 슈베르트의 가곡 레퍼토리로 홈 리사이틀을 즐겨 열곤 했다고 한다.
책을 낼 무렵 아몬드에게는 손주들이 있었다. 2011년 보스턴글로브 인터뷰에서 할머니가되니까 ‘양가감정’이 덜하냐는 질문에 그는 “조부모 노릇(Grandparenthood)은 부모 노릇과 달리 순수한 기쁨이다.(…) 하루 이틀 뒤 조금도 미안한 마음 없이 짐 싸서 집에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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