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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의 길 위의 이야기] 걸어서 찾아온 친구들

입력
2016.04.0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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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너머 사는 친구들이 산길을 걸어 우리 집까지 왔다. 자하문 터널과 사직터널 위 산길을 걸어온 것이다. 걷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에겐 지옥처럼 먼 길이지만,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곳곳에서 탄성을 지르게 하는 비경이 있는 길이다. 그들이 걸어왔을 인왕산 자락길엔 매화, 산수유, 제비꽃 같은 봄꽃이 한창이다. 진달래꽃도 눈길을 잡는다. 평소 걷는 것을 싫어하는 친구도 오늘만큼은 유쾌하게 걸었을 것이다. 그 길을 걸으며 나의 삼십 대와 사십 대가 지나갔다. 샛노란 모감주나무 꽃이 필 때는 거의 매일 걸었다. 꽃빛이 조금씩 다른 겹벚꽃나무와 시원해 보이는 가중나무, 노간주나무도 내 시선을 잡았다. 처음 그 길을 걷던 삼십 대만 해도 나는 잘 걷지 못했다. 걷고 나면 피로감으로 힘들게 걸었던 시간보다 오래 누워 있어야만 했다. 그랬던 내가 한 마리 개와 17년 동안 꾸준히 인왕산을 걷는 동안 걸음이 점점 빨라졌고, 무겁게 느껴지던 몸도 걸어야만 가뿐해지곤 했다. 갑자기 온 친구들을 대접할 거라곤 냉수밖에 없었다. 가끔 내일 죽을 사람처럼 집에 먹을 거라곤 없을 때가 있는데, 오늘이 딱 그랬다. 그래도 그들은 마당에 선 채 지붕 위에서 햇볕을 쬐는 길고양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호주머니처럼 작은 우리 집에 대한 덕담을 이어갔다. 다시는 오지 않을 그 시간을 기억하려고 우리는 똑같은 꽃병을 하나씩 사서 들고 웃으며 헤어졌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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