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이 꿈이라 한 달에 4차례 정도 영화관을 찾던 중학교 2학년 김정환(14)군은 요즘 유일한 취미를 즐기지 못할까 봐 고민이 깊다. 집 근처 멀티멀플렉스 CGV가 이달 초 ‘가격차등제’를 실시하면서 평소 찾던 좌석과 시간대에 영화를 보려면 편당 최대 2,000원을 더 내야 하기 때문이다. 2,000원은 걸어서 왕복 40분 거리인 학원까지의 버스비와 맞먹는다. 한 달 용돈 5만원인 김군에겐 영화비 상승분 8,000원은 적지 않은 돈인 것이다. 김군은 31일 “앞자리나 일부 시간대 관람료는 이전보다 저렴해졌지만 관람 환경도 열악하고 학교 일정과 맞지 않아 오히려 선택권이 줄고 비용만 늘었다”고 푸념했다.
청소년들이 영화 가격차등제에 울상 짓고 있다. 빈약한 주머니 사정과 학업 일정으로 가뜩이나 여가 생활이 자유롭지 못한 10대 청소년에게 좌석ㆍ시간대별로 영화 관람료를 차별화한 가격차등제가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청소년에게 영화 관람은 접근성이 가장 높은 스트레스 해소 창구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2015 영화소비자조사’에 따르면 1년에 한 차례라도 극장영화를 본 10대 청소년은 94.9%에 이른다. 고교생 김진석(17)군은 “뮤지컬과 콘서트 가격은 너무 비싸 용돈으로 충당하기 버겁고, PC방이나 노래방도 부모님 눈치가 보여 자주 못 가다 보니 주로 영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격차등제 도입으로 청소년들도 관람료를 회당 1,000~3,000원 더 지불하게 됐다. CGV는 3일부터 좌석을 3단계로 구분해 이코노미존은 기존 가격보다 1,000원 적게, 스탠다드존은 기존과 동일하게, 프라임존은 1,000원 높게 책정했다. 관람 환경 품질에 따라 가격에 차등을 두겠다고 발표했으나 프라임존 좌석 비중이 절반 가까이를 차지해 사실상 관람료 인상만 가져왔다는 비난을 받은 제도다.
특히 청소년들이 느끼는 가격 인상 체감도는 훨씬 크다. 청소년 할인 폭이 큰 조조영화나 ‘문화가 있는 날’ 등의 혜택은 청소년에게 사실상 그림의 떡이다. 상영 시간대가 각각 오전 7~9시, 오후 5~9시에 편성돼 있어 학교 학원 시간과 겹치고, 상영 횟수도 한 두 차례에 그쳐 이용이 사실상 어려운 탓이다.
또 청소년 수요가 높은 특수영화(3D, 4D, 아이맥스 등)의 경우 관람료가 1만원 후반대로 훌쩍 올라 이 또한 부담이다. 중학생 정모(13)양은 “주말 오후 아이맥스 3D 영화 한 편을 좋은 좌석에서 보려면 1만7,000원을 내야 한다”며 “용돈이 적은 나로선 매번 친구들과 함께 관람이 힘들어 소외감이 든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격차등제 실시 후 등장한 일명 ‘메뚜기족(빈 상급 좌석을 찾아 돌아다니는 얌체족)’ 중에는 청소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주부 김모(53)씨는 “지난 주말 극장 중간 자리에서 영화를 보는데 가격이 싼 맨 앞줄에 있던 학생 8명이 영화 시작과 동시에 우르르 뒤로 몰려 가격이 비싼 빈 자리에 앉아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란 적도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시장 점유율 1위인 CGV 결정 이후 다른 대형 극장체인들도 유사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청소년의 선택지를 더욱 좁게 만들고 있다. 청년유니온 김민수 대표는 “한국의 척박한 놀이 문화에서 청소년에게 영화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며 “CGV의 조치는 대기업이 앞장 서 청소년 문화권을 빼앗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CGV 관계자는 “이코노미 좌석을 비롯해 이전보다 저렴한 관람이 가능한 혜택들을 마련했고 가족관람 할인율도 인상하는 등 청소년이 소외 받지 않도록 다양한 대안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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