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우주피스 공화국 탄생

입력
2016.04.01 04:40
0 0

[기억할 오늘] 4월 1일

'국경'에 서 있다는 우주피스 공화국 표지판. curiouscatontherun.wordpress.com
'국경'에 서 있다는 우주피스 공화국 표지판. curiouscatontherun.wordpress.com

1997년 4월 1일 ‘우주피스(Uzupis) 공화국’이 섰다. 북유럽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Vilnius)의 한 작은 마을 주민들이 만우절 장난처럼 건국을 선언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빌뉴스의 옛 시가지를 빌넬레(Vilnele)라는 이름의 실개천이 감싸고 흐른다. 올드타운 반대편은 가파른 벼랑이고 다른 한 켠은 이제는 패션거리로 변모한 옛 소비에트 시절의 공단지역. 그 사이에 0.6㎢ 면적의 작은 ‘공화국’우주피스가 있다. 우주피스는 ‘강 건너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주피스는 근 천 년 유대인들의 게토였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프라하의 묘지’의 그것처럼, 무덤 위에 무덤이 얹히고 얹혀 비석들로 바늘쌈지가 돼버린 오래된 유대인 공동묘지가 있는 마을. 2차 대전 중 주민 대다수가 홀로코스트로 희생됐고, 전후에는 버려지다시피 한 마을이 됐다.

주민들이 그린 그래피티. 그들에게 벽은 캔버스고 마을은 갤러리였겠다. caucult.net
주민들이 그린 그래피티. 그들에게 벽은 캔버스고 마을은 갤러리였겠다. caucult.net

1990년 리투아니아가 독립할 무렵 노숙인과 마약중독자의 쉼터 겸 매매춘의 아지트 같던 마을의 빈 집들에 가난한 동구의 예술인들이 깃들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개성과 느슨한 공동체의식이 결합해, 우리 같지 않은 자율적 ‘새마을운동’이 전개됐다. 집과 길을 꾸며 마을 꼴을 갖추고 그들만의 새로운 규범들도 하나 둘 만들어갔다. 그 끝이 리투아니아의 시인 겸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로마스 릴레이키스(Romas Lileikis)가 주도한 공화국 독립 선언이었다.

만우절 하루 동안 존재하고 사라지는 거짓말 같은 공화국이지만 철 따라 색깔이 바뀌는 국기가 있다. 사실상 유료공원인 춘천 ‘나미나라(남이섬ㆍ2006년 3월 1일 출범)’와 달리 24시간 임기의 대통령과 내각이 있고, 손바닥 도장 입국 비자도 받아야 하지만 ‘진짜’ 공화국인 우주피스 공화국엔 입장료가 없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3개항의 국가 이념(형식은 헌법 39조)- 싸우지 않고, 이기지 않고, 항복하지 않는다-과 38개조 헌법도 있다. “모든 국민은 빌넬레 강변에 살 권리가 있고, 강은 국민 곁을 흐를 권리가 있다”가 제1조다. 공화국의 국민은 실수할 권리(4조)와 유일무이할 권리(5조), 사랑할 권리(6조), 게으를 권리(9조), 고양이를 사랑하고 돌볼 수 있는 권리(10조), 개를 키우다가 사람과 개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사랑할 권리(11조), 행복할 권리(16조), 행복하지 않을 권리(17조)를 헌법으로 보장받는다. 헌법이 부정하는 것은 폭력(20조)과 영원을 기획할 권리(22조)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을 공유할 권리(29조)다. 또 하나 시의회 협조 하에 상업 시설의 입주를 일절 불허하고 있다.

오늘, 1년 중 웬만한 거짓말은 웃음으로 용서받는 그 24시간 동안, 지구본의 바늘 자리만한 공간 위에 그 공화국이 선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