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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학생들 보며 교사 자존감 잃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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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학생들 보며 교사 자존감 잃어가”

입력
2016.04.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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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학자이자 파워라이터 엄기호(45)씨가 ‘교육 너머 교육’을 오늘부터 격주 기고합니다. 교육 현장의 첨예한 현안이나 문제적 상황의 복판에 있는 인물을 인터뷰하며 우리 교육의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입니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공부 중독’ 등 화제작에서 학교 현장에 대한 깊은 이해력과 날카로운 인문ㆍ사회학적 통찰로 우리 교육의 위기상황을 드러내는 작업을 천착해왔던 엄기호씨의 연재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줄세우기 교육 따른 무기력 탓

즐겁게 가르친다고 해결 안 돼

교사에 교육과정 재량권 줘야

비정규직 될 확률 50% 시대

어떤 직업 가질지 감도 못 잡아

아이들도 ‘비정규 교원’ 차별

잘못된 인식… 가장 안타까워

교사ㆍ노동자 정체성 모두 있어

전교조 역할에 대한 비판 ‘숙명’

법외노조 사태는 참교육 방해

초심 잃지 않고 맞서 나갈 것

변성호(왼쪽) 전교조 위원장과 엄기호씨가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본부에서 우리 교육현장의 현실과 대안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변성호(왼쪽) 전교조 위원장과 엄기호씨가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본부에서 우리 교육현장의 현실과 대안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부패하고 폭력적이던 학교에 상처받고 불신하고 있던 청소년 시절, ‘다른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1989년 결성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였다. 당시 전교조를 결성한 교사들이 해직되어 교문 밖으로 쫓겨날 때 학생들은 창문에 붙어 ‘선생님 사랑해요’를 외치며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그런 과정을 거쳐 합법화되었던 전교조가 다시 법외노조가 되었다. 변성호(56) 전교조 위원장을 만나 전교조와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_법외노조가 됐다. 현재 상황과 앞으로 전교조의 계획은.

“2심 법원 판결 이후 대법원 판결만 남겨 놨기 때문에 우리는 사실상 법외노조라 여기고 준비하고 있다. 전교조는 이번 법외노조 사태가 전교조라는 조직에 대한 탄압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공교육 강화, 참교육 실천을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구호도 ‘전교조 사수’가 아니라 ‘참교육 사수’라고 하고 있다. 현실적 고민을 감안해서 이전 전임자의 절반은 학교로 돌아가고 절반인 35명 정도는 남아 전교조의 참교육 업무를 꾸준히 하겠다는 것이다. 법외노조이지만 헌법노조상의 권리를 인정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하지 않겠다면 해직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지금 당장에는 조합원들이 마음을 모아줬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다. 교사로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아이들에게 올곧은 교육을 해보자는 초심을 잃지 않고 맞서려고 한다.”

유엔 산하의 국제노동기구(ILO)는 해고자들의 ‘노조원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 결사의 자유 원칙과 양립할 수 없는 모순된 처사’라고 지적했다. 노동조합의 자주권에 대한 국제적 보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도 전교조의 활동 방향에 대해 비판적 시선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위원장을 만나기 전에 주변의 교사들에게 무엇을 묻고 싶은지 알려 달라고 했다. 전교조가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지지를 더 광범위하게 얻기 위해서 무슨 노력을 해야 하는지, 젊은 교사들이 전교조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학교 현장에서 전교조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물어봐달라고 했다. 뾰족한 질문들에 위원장은 그런 비판을 받는 것을 전교조의 ‘숙명’에 빗댔다.

“전교조 창립 선언문에도 나타나듯이 전교조 조합원들은 교사와 노동자의 역할을 함께 부여 받고 있다. 어떤 시기엔 교사로서 전문성이 강조되고, 어떤 시기엔 노동자로서 다른 노동자들과의 연대가 강조된다. 조합 내부에서조차 ‘학교만의 문제를 얘기했으면 좋겠다’ ‘교사들이 노동자로서 본을 보여야 한다’는 토론이 이뤄지는 가운데, 계속 균형을 잡아가며 온 것이다. 두 가지 역할 모두를 고민하고 수용하려다 보니 부족한 부분이 없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교조에 대한 정부의 강공은 역풍을 낳고 있다. 젊은 교사들 중에는 전교조의 활동 방향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법외노조 사태 이후 전교조에 가입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훼손하여 “자존심이 상했다”고 말했다. 이것은 교사들이 자신을 국가의 하급 관리가 아니라 교육을 실행하는 ‘전문가’로 바라보고 있다는 상징적인 말이었다. 전문가 집단의 권위와 자부심은 ‘자율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_교육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교사의 자율성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학교에서의 부정적인 경험 때문에 교사의 자율성에 대해 학부모들이 회의적인 시각이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교사들의 자율성에 대한 전교조의 입장이 궁금하다.

“근대교육이 서구에서 진행된 만큼 선진화된 나라에선 교사 자율권의 더 많이 보장되고 있고, 그것이 근대교육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시민교육도 그렇고 이 사회가 요구하는 교육에서 교사들의 자율권이 주어질수록 교육의 질이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자율권이 교사에게만 적용되는 것 같진 않다. 교육과정을 편성할 때 교사에게 재량권이 주어진다는 것은 학생들과 협업이 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들이 교사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으면 좋을지에 대해 교육과정 기획부터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의 자율권은 교사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 간의 소통, 학생과의 소통, 학부모와의 소통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야 교사의 재량권이 교육의 질을 풍부하게 할 수 있다.”

교사의 자율권을 교사 개인에게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라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생, 그리고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최근에는 인권에서도 권리를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나타났다. 인권은 개인의 이익이나 이해를 추구하기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이라는 공통의 가치를 추구하는 공동의 노력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교육 역시 주체들 간의 소통과 협업을 통해서만 보다 나은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

_한국 교육의 문제점으로 무기력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교사들이 가장 힘든 부분이다. 학생들을 만나러 교실 들어가자마자 학생들은 자고 있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그렇다는 얘기를 한다. 무기력함이 어디서부터 나올까 하는 고민들이 교사들이 수업 혁신에 나서는 첫 번째 유인이다. 단순히 교사가 즐겁게 해주고 재밌게 해 준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않는다. 모든 무기력은 전망이 없을 때 나온다. 전망이 있으면 어렵더라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데. 아이들에게 무기력이 온다는 것은 희망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점수 따기 해봐야 대학도 못 갈 것 같고, 해도 안 되고, 나의 삶에 대해 아무도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고, 이런 것이 무기력으로 오는 것이다. 교육이 지금처럼 입시제도와 서열화, 모든 인간의 모습을 뺀 수치화된 줄서기 교육을 강조하면 많은 아이들이 무기력하고 패배감에 젖을 수밖에 없을 거 같다. 이 과정에서 교사들도 자존감을 잃어 가고 있다.”

_전망이 안 보이는 이유가 교육의 문제뿐만 아니라 노동의 위기에서 오는 것도 큰 것 같다. 학교에서 시키는 걸 다 한다고 하더라도 무슨 직업을 구할 수 있을지 감이 안 온다는 것이다. 전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는 한 학생은 이를 두고 학교도 ‘노(no)답’이라고 말했다.

“법외노조 이외에 전교조가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바로 학교 비정규직 문제다. 학교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자들의 문제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교육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학생들이 지금으로만 봐도 비정규직이 될 확률이 50%가 넘는다. 그런데 노동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고 있다. 노동자가 된다는 것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노동자가 된다. 노동의 가치를 충분히 가르쳐야 한다는 점에서도 학교구성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학교 비정규직은 둘로 나눠 생각해야 한다. 교원으로서 비정규직과 비교사 노동자. 후자 쪽도 상당히 많다. 초중고 교사들이 35만~40만명인데 비교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40만명이다. 학교 운영을 지원해주는 분들이다. 기간제 교원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간제 교원이 전에는 말 그대로 정교사 빈자리를 메우는 역할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비정규직이 하나의 직군처럼 돼버렸다. 엄청나게 많은 비정규직 교사들이 거의 정규직 교사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권리 면에서 제약을 받고 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이 아이들, 학생들이 정규교원과 비정규직 교원을 달리보고 있다는 것이다. 법적, 제도적 신분상 틀 속에서 사람 가치를 달리 평가하는 잘못된 인식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과거 교육은 신분상승의 수단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가 있었고 그 신화는 꽤 큰 효력을 발휘했다. 그 후 교육은 다시 자아실현의 도구였다. 자기를 탐색하고 실현시키기 위해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제위기 이후 생존주의가 전면화되면서 교육에 올인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소수 중산층을 제외하고 나머지 계층의 학생들에게 교육은 완전히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이것이 학교현장에서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서 무기력을 체계적으로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교육의 실패는 미국의 학자 퍼트넘이 ‘우리 아이들’이라는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민주주의의 위기, 가치의 위기, 사회의 위기로 귀결될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 학교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자체의 존립을 위협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결정적인 위기 앞에서 한국의 교육은 국제 규범에도 맞지 않는 전교조의 법적 지위에 대한 논쟁으로 교육 주체들의 진을 빼고 있다. / 문화학자

▦변성호 위원장은

1960년생. 1984년 서울 영파여고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고, 전교조에선 본부 교섭국장(2006년), 본부 사무처장(2013~14년) 등을 역임했다. 2010년 이명박 정부 규탄 시국선언 참여로 학교에서 해직됐다가 2012년 대법원 판결로 복직했다. 2014년 말 전교조 위원장 선거에서 법외노조 저지,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학교혁신을 공약으로 걸고 당선(임기 2년)됐다.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가 정당하다”는 지난 1월 항소심 판결에 따른 당국의 전교조 노조전임자 학교복귀 명령을 거부하며 다른 전임자 34명과 함께 대정부 투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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