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질환 증상으로 부모에 의해 강제로 입원한 30대 남성이 “위법한 절차에 따라 입원하게 됐으니 내보내달라”며 병원을 상대로 낸 인신보호 사건에서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퇴원시키라는 결정을 내렸다. 입원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사후에 내려졌더라도 입원과정 자체가 법적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취지다.
31일 법원 등에 따르면 이모(39)씨는 평소 특허에 관심이 많아 인터넷에 글을 쓰곤 했다. 그에겐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고 그것을 사실로 믿는 과대망상 증상이 있었다. 또 평소 작은 소리에도 민감한 편이어서 화장실에서 변기 물 내리는 소리만 나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씨 부모는 이씨와 함께 집에 있을 때면 “숨도 제대로 못 쉬겠다”며 힘들어했다. 이씨는 평소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어머니가 음식에 독을 타거나 비위생적인 재료로 요리를 한다고 믿었다. 이씨는 또 ‘사타구니에 땀이 많다’며 아버지가 이씨를 만졌다고 주장했다. 이씨 부모는 “어떻게 부모가 자식에게 그런 짓을 하겠냐”며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던 중 이씨 어머니는 지난 1월 혼자 정신과를 찾았다. 이씨의 증상과 병력을 전해 들은 의사는 입원을 권유했다. 하지만 이씨는 “나는 정신병에 걸리지 않았다”며 완강히 거부했다. 이씨 어머니는 며칠 뒤 사설응급업체에 출동을 요청, 사설응급업체 직원이 이씨를 결박해 서울시내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이씨를 대면 진찰한 의사는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입원하게 된 이씨는 법원에 구제청구서를 접수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1단독 정재우 판사는 “헌법상 보장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적법한 절차에 따라야 한다”며 “이씨를 즉시 퇴원시키라”고 결정했다. 부모가 동의해도 본인의 동의나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 없이 강제로 이송한 것은 위법하다는 것이다. 정 판사는 “이씨 부모가 이씨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강제로 결박한 것은 정신과 전문의를 대면해 진찰하고 입원 결정을 하기 전에 이뤄졌다”며 “이는 법에 의해 허용되는 강제력 행사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법원 관계자는 “정신질환자를 강제로 병원에 이송시키는 행위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한 결정”이라며 “법에 따른 절차를 지키지 않은 수용된 때에는 나중에 입원 요건을 갖췄더라도 위법하다고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지연기자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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