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리안/사진=KPGA 제공
김리안(22)은 18살 때부터 캐디로 일했고 지금도 전남의 한 골프장에서 캐디 일을 한다. 힘든 가정환경 속에서 프로골퍼의 꿈을 키우는 10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스스로 벌어서 골프를 계속 칠 방법이 캐디 일이었다.
김리안은 그 계기에 대해 "연습생의 월급이 50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 그 돈으로는 골프 장비를 구입하고 대회에 나가기 턱없이 부족해서 몸은 힘들어도 돈도 벌고 시합도 나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골프장 캐디 일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캐디 일도 만만치 않긴 마찬가지였다. 새벽 5시에 출근해 오전과 오후 2번 캐디 업무를 한 뒤 연습장으로 가 훈련했다. 이런 식으로는 실력이 늘 리 만무했다.
피곤에 지친 김리안은 "골프를 포기하려고 했다"며 "실력이 안 되니 시합 출전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한국프로골프(KPGA) 프로 선발전도 번번이 떨어졌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희망의 끈을 놓을 때쯤 아버지가 다시 한 번만 더 나가보라며 대신 접수를 해줬다. 그리고는 드라마처럼 예선과 본선을 잇달아 통과하며 2014년 꿈에 그리던 KPGA 프로 자격 취득에 성공한다.
2016년은 바야흐로 활짝 피는 해가 될지 주목된다. KPGA 프로 준회원 신분으로 KPGA 프론티어투어(총상금 4,000만원ㆍ우승상금 800만원) 시즌 첫 대회에서 마침내 생애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김리안은 프론티어투어 1회 대회에서 최종합계 6언더파 138타로 정상에 올랐다.
경기 후 감격에 겨운 김리안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면서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부모님께 너무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말씀 드리고 싶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부모님이 없었다면 자신도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효자다. 김리안은 184cm-90kg의 건장한 체구지만 사실 어릴 적엔 몸이 굉장히 약했다. 걸핏하면 쓰러졌다. 고민 끝에 부모님이 김창수에서 김리안으로 개명해줬다. '오얏나무가 늦게 피면 얼마나 늦게 피겠는가'라는 뜻으로 그 뒤로 신기하게도 그는 아픈 날이 줄어들고 체구는 커져만 갔다고 전했다.
김리안은 10세 때 아버지 따라 골프연습장에 갔다가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더 좋은 환경에서 골프를 배우고자 12세 때 필리핀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집안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지며 3년을 못 채우고 돌아왔다. 1년간 쉬던 그는 16세 때 골프 연습생으로 들어갔고 2년 뒤 캐디로 취직했다.
김리안은 한국으로 돌아온 뒤 학교에 가지 않아 최종학력이 중학교 중퇴였는데 열심히 공부해 지난해 검정고시를 통과하며 중졸이 됐다. 이제는 고입 과정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학업과 돈, 꿈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좇아 누구보다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 김리안은 이런 자신이 비슷한 처지의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돼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는 "시합만 나가면 위축되고 작아지는 나였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후회 없이 질러보자'고 생각했는데 첫 대회에서 우승하게 됐다"며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힘들게 운동하는 모든 선수들에게 힘내라고 전해주고 싶다"고 응원했다.
정재호 기자 kemp@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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