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20일 오후 9시21분. A지방경찰청 112 지령실로 다급한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신고자는 “남편이 술에 취해 가족을 죽인다고 위협하면서 문을 열어주지 않고 있다”고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경찰은 코드1(긴급)으로 신고를 접수하고, 곧바로 관할 지구대에 하달했다. 그러나 관할 지구대 소속 순찰차는 30분 전부터 “가게 앞에 차량이 주차돼 오토바이를 들여 놓지 못한다”는 코드2(비긴급) 신고를 처리하고 있어 이동이 불가능했다. 결국 인근 지구대 소속 순찰차가 9분이나 지난 오후 9시30분에야 현장에 도착했다. 다행히 경찰특공대가 출동해 남편을 검거하면서 상황은 종료됐지만 출동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인명 피해가 났을지도 모를 아찔한 순간이었다.
경찰이 중요도가 낮은 112신고 처리에 시간을 허비하다 정작 위급한 사건 현장에 늑장 출동한 사례다. 경찰은 이런 폐단을 줄일 목적으로 112신고 대응 단계를 종전 3단계에서 5단계로 세분화해 긴급 출동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31일 밝혔다.
경찰은 2009년부터 112신고를 코드1(긴급)과 코드2(비긴급), 코드3(비출동)로 나눠 대응해 왔다. 하지만 전체 신고 건수(지난해 기준) 중 긴급성이 떨어지는 코드3(43.95%)과 코드2(44.9%)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다 보니 긴급신고가 접수돼도 처리가 지연되는 일이 왕왕 발생했다. 코드 분류가 구체적이지 않아 긴급 사건이 비긴급 신고로 뒤바뀌는 오류도 났다. 실제 2014년 전북 군산에서는 같은 사람에게 4차례나 살인을 예고하는 112신고를 받고도 코드3로 분류해 살인미수 사건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새로 마련된 112신고 코드는 모두 5단계다. 코드0은 여성이 비명을 지르는 등 강력범죄가 진행 중일 때 발령된다. 코드1은 낯선 이가 현관문을 열려고 하는 등 생명ㆍ신체에 위험이 임박하거나 진행형인 경우다. 경찰은 코드0, 코드1은 긴급 신고로 분류해 최단시간 내 우선 출동할 방침이다.
비긴급신고인 코드2는 집에 와 보니 도둑을 당한 피해처럼 직접적 위해는 없지만 잠재적 위험에 노출된 상황에 발령돼 긴급신고 처리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출동한다. 코드3는 즉각적인 현장조치는 불필요하나 수사나 전문상담이 필요한 경우, 코드4는 민원, 상담 등 관련 기관과의 연계를 필요로 할 때 적용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개편으로 현장 출동이 줄고 비긴급 신고에 대한 부담도 더는 만큼 긴급 사건 대응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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