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 예선 행을 꿈꿨던 김판곤(47) 감독의 홍콩이 아쉽게 여정을 마쳤다. 홍콩 축구대표팀은 25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알 사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카타르와의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예선 C조 조별리그 8차전에서 0-2로 패하며 최종예선 진출에 실패했다.
8경기가 열린 2차 예선에서 홍콩이 받아 든 성적표는 4승2무2패(승점 14점). 카타르를 극적으로 꺾은 중국(5승2무1패)에 조 2위 자리를 내주며 최종예선 진출의 꿈을 접었지만 그는 30일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홍콩 축구의 가능성을 본 여정이었다”고 평가했다.
몇 년 전까지 홍콩에겐 같은 조의 부탄, 몰디브조차도 버거운 상대였지만 예선 초반 부탄과 몰디브를 홈으로 불러들여 7-0, 2-0 승리를 거두면서 홍콩 축구팬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던 김감독은 지난해 9월 3일 열린 중국과의 원정 경기에서 ‘대형사고’를 쳤다. 중국 공격진을 완벽히 틀어막으며 0-0 무승부를 기록했다.‘어쩌다 한 번이었겠지’싶었던 이들도 11월 17일의 결과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김판곤의 홍콩은 이날 중국을 홈으로 불러들여 또 한 번 0-0 무승부를 거뒀다. 홍콩은 열광했고 중국은 충격에 빠졌다. 2014년 이른바 ‘우산혁명’이 무산된 이후 반중(反中) 정서를 품었던 홍콩 사람들은 700만 인구의 홍콩이 14억 인구의 중국과 대등한 경기를 펼친 데 대해 상당한 긍지를 느꼈다. (▶中 축구굴기에 굴욕감 안긴 김판곤)
자연히 김감독의 위상도 높아졌다. 영국 문화가 남아있는 홍콩에서 ‘기사(Sir)’ 대접을 받은 지 오래고, 월드컵 예선 기간 중엔 2002 한일월드컵 때나 볼 수 있었던 ‘거리 응원’과 ‘김판곤 가면’까지 등장했다. 무엇보다 일상에서 개인 차량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시민들과 함께 호흡해 온 모습은 많은 홍콩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홍콩축구협회는 김판곤 감독과 2018년까지 계약을 연장했고, 홍콩에선 지난 1월 영주권 줬다. 김감독은 홍콩에서 쓸 영문 이름으로 ‘김조슈아(Joshua Kim)’를 택했다. 홍콩 땅에서의 지도 철학과 목표를 담은 이름이다. 그는 “조슈아는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최고의 장수겸 지도자로, 이스라엘을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한 영웅이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월드컵을 향한 여정을 마친 그의 눈은 벌써부터 11월에 열릴 동아시안컵 예선과 내년 6월 아시안컵 예선을 향해 있다. 숨 좀 돌려도 될 법 하지만 준비할 일이 많단다. 김감독은 “이제 세대 교체를 준비할 시기라 신경 쓸 부분이 많다”며 “대표선수를 뽑아도 소집 기간이 넉넉지 않아 항상 시간이 부족하단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이번 월드컵 예선 여정에 대해 “탈락은 아쉽지만 가진 것에 비해 좋은 결과였고 선수들에게도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홍콩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목표를 묻자 “그저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 뿐”이라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무명 외국인감독이었던 나에게 큰 기회와 분에 넘치는 사랑을 준 곳이다. 성과에 대한 공약보다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는 게 보답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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