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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달린 에로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입력
2016.03.3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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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3월 31일

알렉산드라 콜론타이(1872~1952). 1920년대 중반 이후 스탈린 견제를 받으며 노르웨이와 멕시코, 스웨덴의 공사와 대사를 역임했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1872~1952). 1920년대 중반 이후 스탈린 견제를 받으며 노르웨이와 멕시코, 스웨덴의 공사와 대사를 역임했다.

‘날개 달린 에로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가 1872년 3월 31일 태어났다. ‘러시아 혁명의 붉은 장미’로 더 알려진 볼세비키 혁명가이자 여성해방운동가였다. 날개 달린 에로스는 그가 소련공산당 여성담당 인민위원이자 ‘제노텔(여성문제 전담 정치기구)’ 대표였던 1922년 ‘젊은 노동자에게 쓰는 편지’라는 짧은 팸플릿에 쓴 표현. 그는 혁명 후 다급한 사상ㆍ계급투쟁 와중에 왜 성(性)과 ‘사랑의 수수께끼’가 중요하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압축적으로 설명했다.

“성별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은 인간사회 그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미스터리이다. (…)해결의 열쇠는 다른 획기적 사건들과 권력 있는 계급, 특정한 시대(다른 말로 문화에 의해)의 ‘정신’에 의해 주어진다. 러시아에서 최근 몇 년 동안의 격렬한 시민전쟁과 막연한 혼란 속에서 그 수수께끼의 근원에 관한 흥미는 거의 없었다. 노동계급의 남성과 여성은 다른 감정과 열정과 표현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난해 동안은 모든 사람들은 죽음의 그늘을 걸어 다니고, 승리가 혁명과 진보로 귀결될지 반혁명과 반동으로 끝날지 결정될 시기였다. 혁명의 위협에 직면하여, 미묘한 날개 달린 에로스는 삶의 현장으로부터 달아나고 있었다. 시간도 없었고 사랑의 ‘기쁨과 고통’을 향한 내적 힘의 여분도 없었다.”

그는 혁명 러시아의 성 억압 이데올로기가 극복되지 않는 한, 국가와 더불어 부르주아적 가족제도가 해체되지 않는 한, 진정한 혁명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가사노동 해방(사회적 노동으로 대체), 성의 완전한 평등이 핵심 주장이었다. 주종의 불평등 관계 위에 존속해온 일부일처제는 타락한 부르주아적 이념ㆍ관습의 답습 혹은 투항일 뿐이며, 에로스의 가치는 모두가 잊고 있는 ‘날개’에 있다고도 했다. 종속도 억압도 없는 자유로운 동지적 사랑. 그는 그 사랑을 성적 방탕과 본질적으로 다른, 진정한 ‘자유 연애’라 주장했다.

1차대전 전후 레닌 국제주의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였고, 2월 혁명 후 멘셰비키 임시정부에 맞서 볼셰비키 혁명을 주장한 급진적인 혁명가였고, 10월 혁명 뒤 볼셰비키 중앙위원회 유일의 여성 위원이었던 그는, 하지만 노동조합에 대한 당의 권위주의적 정책에 반대하고 여성운동을 주장하면서 ‘분파주의자’라는 오명을 쓰고 권력 핵심에서 밀려났다. 30년대 스탈린 숙청에서 그가 살아남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볼셰비키의 뿌리깊은 성차별 의식 덕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여성이었고, 그들에게 여성은 권력투쟁의 종속변수였다.

30년대 이후 그는 ‘붉은 사랑’(장편소설)과 ‘위대한 사랑’(작품집) 등 소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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