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성스러운 노이즈 마케팅
과시적 비즈니스 타성 여전
일희일비 말고 더 지켜봐야

요즘 세계 뉴스의 중심은 단연 미국 공화당 경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다. 하는 말, 행동 하나하나가 매스컴을 장식하며 국제적 논란을 부추긴다. ‘노이즈 마케팅’의 진수를 보는 듯하다.
며칠 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 일본의 핵무장에 대해 “언젠가는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해 세상을 뒤집어놨다. 시기도 특정하지 않았고, 미국의 안보부담을 거론하다가 내뱉은 발언으로 짐작되지만 극히 예민한 핵무장 문제를 북한 핵실험으로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지금 동맹국들을 상대로 언급한 자체가 정상적이지 않다. 같은 인터뷰에서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재차 거론하며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는 발언과 함께 방위비 분담금 문제에서 한국을 단단히 길들여보겠다는 속내를 내비친 게 아닌가 싶다.
동맹국들의 안보에 과도한 부담을 지고 있다는 미국의 불만이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달 초 유럽과 중동의 핵심 우방인 영국 프랑스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해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했다. ‘유럽의 혈맹’이라는 영국에는 총리 이름까지 거론하며 “국내총생산의 최소 2%를 부담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미국과 특수관계가 아니다”고까지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안보와 관련해 즐겨 하는 말이 “멍청한 짓 하지 마라(Don’t Do Stupid Stuff)”다. ‘DDSS’라는 유행어까지 나왔다. 2년 전 웨스트포인트 연설에서는 “우리가 제일 좋은 망치를 들고 있다고 해서 세계의 모든 문제들을 못으로 봐서는 안 된다”며 ‘신고립주의’ 외교 독트린을 발표했다. 미국이 모든 국제분쟁에 개입할 여력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좋은 말로 해서 ‘다자주의’지만 웬만한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것이고, 미국의 군사력이 필요하다면 상응하는 부담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목소리는 워싱턴의 유력 싱크탱크는 물론 전통적으로 ‘강한 미국’을 주창하는 공화당에서도 적지 않다. 나약해졌다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미국이 발을 빼려는 이유는 물론 엄청난 재정적자 때문이다. 여기에 15년 가까이 계속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대한 피로감, 셰일가스의 등장으로 중동원유 의존도가 줄어든 때문도 크다.
외교안보에 대한 경험과 철학이 전혀 없는 트럼프가 무슨 심모원려(深謀遠慮)에서 이런 말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트럼프가 살아온 인생역정이나 일천한 정치경력을 들여다보면 유감스럽지만 상업적이고 얄팍한 계산에서 안보를 들먹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아버지에 이어 2대째 부동산 사업을 하는 트럼프의 트레이트 마크는 ‘자기과시’다. 일방적 주장이든, 고도의 마케팅이든 비즈니스계에서 트럼프의 생존전략은 자신을 최대한 포장하고 선전하는 능력이다. 그는 매년 빠지지 않고 US오픈 테니스 경기장의 앞줄 가장 비싼 자리에서 애인이나 부인과 함께 핫도그를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테니스와 특별한 인연이 없는 그가 매번 US오픈 경기장에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하는 가장 그럴듯한 분석은 그 자리가 전세계 수백만 명의 시청자들에게 가장 잘 노출되는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993년 두 번째 부인과의 성대한 결혼식 장면을 TV, 신문 등에 돈을 받고 팔아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것도 그의 과시적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를 일약 TV 스타로 만든 리얼리티 프로그램 ‘어프렌티스’ 역시 트럼프 특유의 ‘성공지상주의’가 없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쓴 ‘챔피언처럼 사고하라’에서 “내가 쓰는 사람은 최선을 다했다고 둘러대는 사람이 아니라 반드시 해내겠다는 사람”이라고 했다.
공화당 경선주자 트럼프의 지금까지의 모습은 철저히 돈과 성공만을 좇는 비즈니스맨의 속성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대선 후보를 쟁취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트럼프의 모습에서 부동산 재벌 트럼프가 떠오른다. 좋게 생각하면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된 뒤 대통령이 되기 위해 그가 또 어떤 변신을 할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은 트럼프가 내뱉는 말을 그렇게 귀담아 듣고 싶지 않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