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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타 야키 400년 시조, 이삼평의 혼이 깃들다

입력
2016.03.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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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차역을 빠져 나왔다. 봄비가 왔다 간 덕분인지 살짝 쌀쌀한 공기 속에서 흙 냄새가 느껴진다. 산에 둘러싸인 마을 전경이 언뜻 보면 우리 나라 여느 시골과 다르지 않다. 관광 가이드북을 펼치니 ‘도공 이삼평(李參平)’ 이름 석 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도자기로 된 하얀 문패가 시선을 끈다. 상점들도 대부분 도자기를 판다. 일본 사가현 아리타정은 조선의 도공 이삼평이 일본 자기를 탄생시킨 마을이다.

이삼평이 도석을 찾았다는 이즈미야마 도석장. 전부 산이었는데, 자기를 만들기 위해 바닥을 깎아내다 보니 평지가 만들어졌다. 현재 이곳에서 채취한 도석은 연구용으로만 쓰이고 있다.
이삼평이 도석을 찾았다는 이즈미야마 도석장. 전부 산이었는데, 자기를 만들기 위해 바닥을 깎아내다 보니 평지가 만들어졌다. 현재 이곳에서 채취한 도석은 연구용으로만 쓰이고 있다.

조선 도공 이삼평이 일본까지 건너간 이유를 알려면 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일본에는 질그릇 정도의 ‘도기’ 기술은 있었지만, 유약을 사용하고 고온에 구워 내구성이 뛰어난 ‘자기’를 만들 기술은 없었다. 기술이 필요했던 일본은 임진왜란 직후 조선에서 도공 몇 백 명을 끌고 갔는데, 이들 중 한 명이 이삼평이다. 아리타에서 도석을 발견한 그는 공정을 분업화해 지금의 공동작업 시스템을 구축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일본을 넘어 유럽에까지 수출되며 명성을 떨친 일본의 대표 도자기 브랜드 ‘아리타 야키’다.

길을 따라 늘어선 전통 가옥들 사이에 도공 이삼평의 14대 손 카나가에 쇼헤이(金ケ江省平)씨가 운영하는 갤러리가 있다. 그는 400년 전 선조들이 썼던 방식을 고수하며 전통을 잇고 있다고 한다. 그를 따라 뒤편에 있는 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중턱에 오르니 이삼평과 천황, 당시 번주(중앙 정부를 대신해 지방을 다스리던 영주)를 함께 신으로 모신 ‘도잔신사(陶山神社)’가 보인다. ‘도공 이삼평은 일본 자기의 시조이자 도자의 신’이라고 했던 가이드의 설명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이삼평의 14대 손 카나가에 쇼헤이씨는 “전통 그대로의 백자는 색을 많이 쓰지 않는다. 한국 전통 백자와 비슷해 익숙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삼평의 14대 손 카나가에 쇼헤이씨는 “전통 그대로의 백자는 색을 많이 쓰지 않는다. 한국 전통 백자와 비슷해 익숙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사를 지나 10분쯤 산을 오르면 꼭대기에 비석이 하나 서 있다. 100년 전, 아리타 자기 탄생 300주년을 기념해 마을에서 세운 이삼평 기념비다. 천황을 모신 신사보다 높은 곳에 우뚝 솟아 있다. 아리타 관광 협회 야마구치 무츠미(山口睦) 전무는 “천황을 최고로 모시는 일본인의 상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당시 분위기를 생각하면 더욱 굉장한 일”이라며 “그만큼 이삼평에 대한 존경심이 크다는 뜻”이라고 평가한다.

기념비 옆에 서서 산 아래를 내려다봤다. 마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의 품에 마을이 폭 안겨있는 모양새다. 불규칙한 능선에 안겨있는 마을의 모양이 꼭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완만한 산이 많은 일본에서는 낯선 풍경이다. 마을의 고즈넉함에 정신을 빼앗긴 사이, 시계가 오후 5시를 가리킨다. 동시에 퇴근시간을 알리는 음악이 마을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리 부산스럽지도 않았던 마을이 더욱 고요해진다.

이삼평 기념비가 있는 곳에서 내려다 본 아리타 마을. 산에 폭 안긴 모습이 우리나라의 여느 시골 풍경과 다르지 않다.
이삼평 기념비가 있는 곳에서 내려다 본 아리타 마을. 산에 폭 안긴 모습이 우리나라의 여느 시골 풍경과 다르지 않다.

한적한 아리타도 인파로 북적대는 시기가 있다. 도자기 축제가 열리는 4월 말에서 5월, 흔히‘골든 위크’라 불리는 기간이다. 올해는 아리타 야키 400주년을 맞아 더 많은 관광객이 찾을 예정이란다. 하지만 이미 평화로운 아리타의 풍경에 마음을 뺏긴 터. 축제 기간을 피해 이곳을 찾는 것도 좋겠다 싶다. 반나절이면 둘러볼 수 있는 작은 마을과 선명한 에메랄드 빛 호수가 맞이하는 아리타 댐, 70년대 목욕탕을 연상케 하는 가마 굴뚝까지. 물살마저 천천히 흘러가는 이곳에서 원 없이 쉼을 즐길 수 있을 테니.

아리타댐에는 산책길을 따라 벚꽃 나무가 늘어서 있다. 매년 3월 말~4월 초가 되면 활짝 핀 벚꽃과 에메랄드 빛 호수가 만들어내는 절경을 즐길 수 있다.
아리타댐에는 산책길을 따라 벚꽃 나무가 늘어서 있다. 매년 3월 말~4월 초가 되면 활짝 핀 벚꽃과 에메랄드 빛 호수가 만들어내는 절경을 즐길 수 있다.

아리타=박고은PD rhdms@hankookilbo.com

*취재협조 : 아리타관광협회(www.arita.jp)

*아리타지역 관광문의 : (주)ICC 02-737-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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