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푼 꿈을 안고 태평양을 건넌 한국산 타격기계 김현수(28ㆍ볼티모어)가 꿈의 무대를 밟아보지도 못할 위기에 놓였다.
볼티모어의 벅 쇼월터(60) 감독과 댄 듀켓(58) 단장은 30일(한국시간) “김현수를 개막 25인 로스터에서 빼겠다”고 밝혔다. 쇼월터 감독은 이날 볼티모어 지역 매체 미드 애틀랜틱 스포츠 네트워크(MASN)와 인터뷰에서 “내가 먼저 김현수에게 그것(마이너리그행)을 제의했고, 오늘 단장이 (김현수와)대화를 나눴다. 김현수는 자신의 선수 경력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범 16경기에서 타율 1할8푼2리로 부진한 김현수에 대해 현지의 비관론이 확산되면서 결국 볼티모어가 결단을 내린 것이다.
쇼월터 감독은 “김현수는 노포크(볼티모어 산하 트리플A 구단)로 가서 구단에 도움이 될 때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며 “여기(메이저리그)에는 김현수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선수가 있고, 우리는 최고의 선수들로 25인 로스터를 짜야 한다”며 단호하게 김현수를 외면했다. 듀켓 단장 역시 MASN과 인터뷰에서 “김현수를 25인 로스터에서 제외할 계획이며, 조이 리카드가 주전 좌익수를 맡게 된다. 이 곳에서 성공하길 원하는 김현수는 멀리 보고 노력할 것”이라는 말로 김현수의 개막 로스터 제외 계획을 확인했다.
선택은 마이너리그행 거부권을 가진 김현수의 몫이다. 쇼월터 감독은 “모든 건 김현수 손에 달렸다. 그가 (마이너리그행을) 받아들일지 거부할지 난 모르겠다. 어쨌든 김현수에게 적응할 기회가 될 것이다. 아직 그가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는 걸 동의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2년간 700만달러(약 81억원) 조건으로 볼티모어 유니폼을 입은 김현수는 마이너리그 강등 거부권을 계약서에 포함시켜 볼티모어는 선수 동의 없이 마이너리그로 내릴 수 없다. 그런데 김현수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점이 스프링캠프 때부터인지, 아니면 시즌 개막 후부터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전문가 송재우 해설위원은 본보와 통화에서 “쇼월터 감독의 발언으로 미루어 볼 때 김현수가 시즌 개막 전부터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계약을 한 것 같다”면서 “김현수의 결정에 달렸지만 만약 거부해 25인 로스터에 포함된다 하더라도 볼티모어가 김현수를 쓸 생각은 없어 보인다”고 전망했다.
오히려 볼티모어는 권리를 가진 김현수를 더 압박하고 있는 모양새다. 만약 김현수가 끝까지 마이너리그행을 거부할 경우 볼티모어는 그를 25인 로스터에 넣거나 약속했던 700만 달러를 모두 주고 방출하는 수밖에 없다.
김현수는 지난 26일 뉴욕 양키스와 시범경기 후 4경기 연속 선발에서 제외됐고, 27일 보스턴전 교체 출전 뒤에는 3경기째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송재우 위원은 “외야 자원이 빈약한 볼티모어가 뭘 믿고 그러는지 모르겠다”면서 “단 16경기만에 김현수를 전력 외로 구분한 건 쇼월터 감독의 뜻이라기보다 조급한 볼티모어 구단의 성향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김현수는 미국 도전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마이너리그에서 절치부심하는 길이 최선으로 본다. 기회는 분명히 주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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