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둥이가 아빠 연기 스타일도 바꿔놨어요.”
배우 송일국(46)의 웃음 소리가 더 커졌다. 지난 26일 종방한 KBS1 사극 ‘장영실’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보다는 오랜 배우 생활에서 비롯된 여유가 호탕한 웃음으로 터져 나온 듯했다. 특히 삼둥이 대한, 민국, 만세 이야기가 나올 때면 입과 웃음 소리는 더욱 훨씬 커졌다.
30일 오전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송일국은 “대한이, 민국이, 만세 때문에 역할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며 “‘장영실’도 아이들이 준 선물”이라고 말했다.
송일국이 “예전 같으면 하지 않았을” 작품이 ‘장영실’이다. 그는 KBS 드라마 ‘해신’(2004)과 ‘바람의 나라’(2008)에서 장보고의 숙적인 염장과 고구려 대무신왕 무휼을 각각 연기했다. 그를 한류스타로 만들어 준 MBC ‘주몽’(2006)에서는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으로 변했다.
‘장영실’은 예전 역할과 달랐다. 염장이나 무휼, 주몽처럼 칼을 휘두르거나 몸싸움을 하는 대신 조선에 과학을 뿌리내리고 발전시키는 인물이었다. 노비에서 종3품의 대호군까지 신분상승을 한 과학자를 맡았을 때 방송가에서도 의아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처음에 장영실 역할을 제안 받았을 때 좀 의외이긴 했어요. 사극에서 왕이나 장군 역할만 했으니까요.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보고 저를 캐스팅하신 김영조 PD께서 ‘송일국에게도 저런 면이 있구나’하셨대요. 삼둥이 때문에 제 이미지도 달라진 거죠.”
근엄한 장군 역만 하던 송일국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목소리를 낮추고 굽신거리는 장면이 많았다. 전장에서 크게 소리 지르며 무사들을 독려하던 기존 사극의 연기 패턴을 지워야 했다. 그는 “목소리 톤을 조절하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며 “연기할 때 스스로를 내려놓는 연습도 필요했다”고 말했다.
조선시대의 아리송한 과학 용어가 줄줄이 나오는 대사도 문제였다. 사극치고는 다소 짧은 24부작이었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송일국은 “대사를 외우느라 뇌가 흘러 내리는 듯했다”고 말했다.
‘장영실’에 몰두해 말을 하던 송일국은 삼둥이 얘기가 나오자 금세 아빠로 돌아갔다. 사극을 끝낸 뒤 아내, 삼둥이와 함께 제주도로 휴가를 다녀왔다고 했다. 사진촬영이 취미인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자신의 계정에 삼둥이 사진을 게재하며 팬들에게 소식을 알리고 있기도 하다. “팬들이 SNS에 사진 잘 올려달라고 휴대폰까지 바꿔주셨어요. 아! (제 팬이 아니라)삼둥이 팬들이죠. 하하.”
송일국은 삼둥이 덕분에 연기폭도 넓어졌다고 했다. 영화 ‘플라이 하이’의 삼류 조폭 역할도 아이들 영향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원래는 잔혹하고 냉혈한 인물이었는데 감독과 상의 뒤 코믹한 요소를 집어넣어 “욕만 하는” 캐릭터로 재가공했다. 노랗게 염색해 퍼머한 헤어스타일과 꽃무늬가 들어간 화려한 의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아이들을 키우려면 돈이 많이 들어가서 쉼 없이 일해야 한다”며 농담조로 말했다. 그러면서도 “주변에서 제 성격이나 연기가 많이 부드러워졌다고들 한다”며 “아이들이 태어나서부터 바뀐 듯하다”고 했다.
아빠를 배우로 두고 있고,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스타가 된 아이들 중 배우의 소질이 엿보이는 애가 있을까. 송일국은 “현재까지는 만세”라고 답했다. “감성이 제일 풍부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내가 상갓집을 다녀왔는데 대한, 민국이는 ‘왜 죽었어요?’라고 묻는데, 만세는 ‘엄마 슬프겠다’고 말했어요. 감성이 남다른 것 같아요.”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