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도 고백할 게 있습니다.
형 말대로 농촌 겨울은 추워요. 기름 값이 치솟을 때면 얼음장 방바닥을 까치발로 다녀야 하니까요. 그 추운 겨울 들른 한 사무실은 후끈거릴 만큼 따뜻했어요. 귀한 음식을 만난 혓바닥처럼, 발바닥이 녹아 내릴 정도였습니다. 바닥 전체가 전기온돌이라 전기료가 걱정되어 물었더니, 사장은 농업용 전기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더군요. 농업과 무관한 사무실이어서 불법이었지만, 솔직히 부러웠습니다.
지인 동생이 전통 건축 관련 자격증을 따서 빌려주는데, 연 4,000만원을 받아 사는 일이 봄바람을 탔다며 저도 따면 어떻겠냐고 권유를 받은 적이 있어요. 수수료만큼 문화재는 망가졌겠지만, 해볼까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작은 집을 지어볼까 해서 땅을 찾아 나선 적이 있었는데, 한 중개업소에서 싼 값에 주겠다며 다운계약서를 엄청 권하더군요. 말하기 창피하지만, 고민했습니다. 다른 중개업소에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불법도 재준데 능력껏 사는 게 인생이지 하더군요. 어투에서 사내다움이 느껴지던 사장은 학교선배더군요.
오래된 일화 속 등장인물들의 평판은 좋았습니다. 한 사람은 진보적이고, 한 사람은 보수적이고, 한 사람은 정확치 않습니다. 형 말대로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어 우리는 정당한 규칙을 어기는 것을 특권으로 즐깁니다. 라면상무 땅콩회항 그리고 신문지상을 뒤덮는 각종 갑질이 여기서 멀지 않아 보입니다. 이를 잘못됐다고 공개하면, 비난 받지요. 내부고발자를 바라보는 우리 시선은 정확하게 여기에 닿아 있습니다.
내부고발자를 타박하는 현실이 그대로 정치로 이어진다고 분노하던 형의 표정이 눈에 선합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에 나선 정치인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나라 망신이라고 윽박지르던 정치인이나 언론은 결코 내부고발자를 보호하지 않을 거라고, 각종 불법 탈법 문제가 터져 나와도 정치인이 승승장구하는 것도 국민의 성품과 무관하지 않다고 한숨 쉬었지요. 저부터라도 어차피 힘 있는 사람은 걸리지 않고, 힘없는 이는 살아야 하니 눈감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지 싶습니다. 오랜 일본의 강제점령과 독재가 남긴 치유하기 힘든 상처지요. 지위가 높으면 책임은 지지 않고 특권만 휘두르는 행태도 그 상처가 남긴 흉터겠지요. 세월호 사건은 그 상처가 언제든 덧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씨에 쏠린 우리 관심은, 어쩌면 미국 국민의 수준에 놀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기 혐의에 인종주의적이고 돈벌이에 능한 그는 무슬림과 멕시칸에 대한 증오를 부추겨 지지율을 끌어올렸지요. 무슬림의 미국 테러와 멕시코인의 불법이민은 미국이 뿌린 씨앗이 자란 결과지만, 미국 국민은 자신들이 정의롭다고 착각합니다. 끊임없는 정치선전과 정치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겠지요. 미국이 끊임없이 과거 제국주의로 퇴행하며, 트럼프와 미국의 민도가 일치하게 된 거죠.
곧 선거지요. 남의 선거가 아니라 우리 선거지요. 국민의 변화 없이는 정치가 변할 수 없다는 말이 진실이라면, 내부고발자 보호가 그 변화의 시작일 수도 있지 싶습니다. 농업용 전기를 끌어다 다른 용도로 쓰고, 불법으로 자격을 빌려주고, 다운계약서 쓰고 하는 일은 창피한 일이지요. 남이 못하는 걸 한다고, 다 자랑스러운 건 아니니까요. 승용차를 타고 열차 승강장까지 밀고 들어간 총리가 으스대는 모습을 상상하면 아이 같다는 생각에 웃음도 나오지만, 아이 같은 어른들이 나라를 꾸려가니 웃을 수만도 없습니다. 무슨 사건이 언제 또 터질지.
투표하기 전, 내부고발자의 심정으로 창피한 일과 자랑스러운 일을 구분해볼 작정입니다. 후보자가 살아온 길을 살펴보고, 역사와 생활 속에서 바르게 살아온 사람에게 투표해야죠. 적어도 과거 그릇된 행동에 창피함을 아는 이에게 투표하겠습니다. 정당투표도 그리 하죠. 정당한 규칙을 지키는 힘만이 부당한 규칙을 폐기할 수 있다는 K형의 말에 공감을 보냅니다.
이상현 한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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