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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귀열 영어] My bad! vs. Mea culpa (내 탓이로다)

입력
2016.03.3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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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You got the wrong number. B: My bad! 요즘 젊은층의 대화다. ‘I’m sorry’ 대신 사용하는 ‘My bad!’는 단순히 ‘I’m sorry about that’ 같은 사과가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지만 ‘그래서 뭘 어쩌겠어요’라는 ‘I don’t care’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물론 어법학자들은 ‘My bad’가 ‘형용사+형용사’의 비문법적인 언어라며 권장하지 않는다.

이 말은 아프리카에서 온 한 흑인 농구 선수를 통해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 그는 free throw를 시도했는데 볼을 넣지 못하자 자신도 모르게 이 말을 내뱉었고 그 말이 그대로 중계 방송을 타며 유명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기록을 보면 1970년대부터 이미 쓰였고 Shakespeare의 작품 속에도 유사하게 쓰였으며 영화 Clueless(1995)에서 소개되며 유명해졌다는 주장도 있다. 지금은 이 말의 적합성 얘기와 my 다음에 명사가 와야 한다는 문법 논쟁도 나온다. 술집에서 실수로 술잔을 깨고 ‘Oh, my bad!’라고 말하면 이 말의 어감이 ‘Oh yeah, I did that, but I don’t care.’처럼 들릴 수도 있어 그 진정성을 놓고 싸움이 벌어진다. ‘Sorry about that’이나 ‘I apologize for that’ 등의 전통 표현보다 가볍고 무책임하게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국의 가톨릭 계에서 한때 슬로건으로 사용하던 ‘내 탓이로다’의 라틴어가 Mea culpa(메아 쿨파)인데 이를 번역하면 ‘through my fault’이고 이는 곧 ‘내 실수를 인정합니다’의 뜻이다. 미사를 드릴 때 죄를 고백하는 과정에서 회개하는 사람이 가슴을 치며 ‘주여, 제가 잘못 했습니다. 회개합니다’(Now, mea culpa, lord! I me repente.)라고 말하던 것이 이제는 간단하게 ‘Mea culpa’라고만 말해도 일상의 사죄 표현이 된 것이다. 듣는 사람이 미안할 정도로 진심 어린 사죄다. 실수와 과오를 인정한다는 뜻에서 이 말은 현재의 미국식 표현 ‘My bad’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My bad가 캐주얼하게 남용되면서 ‘제 잘못으로…’의 뜻으로 가벼워졌을 뿐 뿌리는 같다는 것이다.

1999년에는 그 해의 표현으로 선정될 정도로 인기 있는 말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빈도 높게 쓰인다. 그렇다고 직장에서 업무 회의를 하다가 ‘제가 설명을 잘 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의 뜻으로 ‘Sorry about the confusion. It’s my bad!’라고 말하는 것은 tone과 격이 맞지 않는 어법일 것이다. 미국에서도 서부보다는 동부에서 많이 쓰이고 호주나 영국에서도 가끔 들리지만 지극히 미국적 표현(Americanism)이다. 그렇다고 평이한 영어 ‘I was wrong.’ ‘It was my fault’ ‘It’s my mistake’ ‘I’m sorry about that’ 이 더 많이 쓰이는 것도 아니다. 사과는 하되 책임을 줄이고 자존심은 지키고 싶은 현대인의 심리 속에 ‘My bad!’가 있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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