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를 주는 게 디자인의 사명”
과감한 색체와 장난스런 패턴 등
최근 관련 업계서 잇따라 오마주
멤피스(Memphis)가 돌아왔다. 과감한 색채, 장난스러운 패턴, 상식을 허무는 설계, 섣불리 용도를 한정하기 어려운 형태. 특유의 위트와 유머, 자유분방함으로 1980년대 디자인 혁명을 이끈 이탈리아 디자인 그룹 멤피스의 상징들을 재소환하는 디자인계의 움직임이 몇 년 새 심상찮다.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2011F/W 컬렉션에 멤피스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전위적 신발 등을 선보이더니, 2014년 셀린느S/S 컬렉션에도 멤피스의 실험적 패턴을 닮은 드레스가 등장했다. 혁신, 실험, 유희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디자이너들이 잇달아 80년대 멤피스 스타일을 오마주하면서 이 디자인계의 악동들이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호명되고 있는 것이다.
그 멤피스 디자인이 서울에도 상륙했다. 컨셉 스토어 ‘10 꼬르소 꼬모 서울(이하 10CC)’은 멤피스의 대표 디자이너 에토레 소사스의 가구를 비롯해 가구, 램프, 소품 등 다양한 오브젝트를 소개하는 멤피스전을 연다. 청담점은 26일부터 5월 1일까지, 에비뉴엘 점은 23일부터 4월 3일까지 각각 40여점, 24점의 멤피스 가구 등을 선보인다. 세계적 갤러리 큐레이터로 10CC 창립자인 카를라 소차니가 직접 큐레이팅을 맡았다.
멤피스는 이탈리아 산업 디자인의 르네상스를 이끈 스위스 태생 디자이너 에토레 소사스가 81년 결성해 87년 그룹 해체를 선언한 디자인 혁신 그룹의 명칭이자, 이 그룹이 밀라노에서 운영한 디자인 스토어 이름이다. 그는 기계적 미학이 당위로 여겨지던 1970년대 말 상업주의 디자인에 반발해 10여명의 동료 디자이너들과 결성한 그룹 멤피스를 통해 일련의 디자인 운동을 벌였다. 알레산드로 멘디니, 미켈레 데 루키, 알도 치빅, 마르틴 베딘, 마테오 툰, 나탈리 뒤 파스키에, 조지 소든, 시로 쿠라마타, 바버라 라디체 등이 함께했다. 이집트 신화를 연상시키는 그룹명은 저녁 모임에서 배경음악으로 들린 밥 딜런의 노래 가사(‘Stuck Inside of Mobile with the Memphis Blues Again’)에서 본떴다.
저널리스트 바버라 라디체를 빼곤 모두 건축가였고, 당시 64세였던 소사스를 제외하곤 모두 서른 미만이었다. 이들은 81년 2월 총 100여점이 넘는 ‘뉴 디자인 가구’ 첫 드로잉을 서로 공개했는데 공통점은 하나같이 관습, 규율을 배제하며 넘치는 유희를 선사하는 것을 디자인의 사명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실험적이고 가히 전위적인 드로잉들을 제품으로 옮기며 소사스는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훌륭한 탐험가이자 모험가가 된 것이다. 우리는 넓고 위험한 강을 탐험하고, 그 어느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않은 정글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친애하는 벗들이여, 우리는 넓게 열린 바다의 아주 숙련된 탐험가이기에,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대표하든 혹은 그렇지 않든 간에, 엘리트이건 부랑자이건, 전통적이든 세련되지 못했든 간에, 중요한 건 우리가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의 걱정들은 사라졌기에, 미래에 대한 더 격한 두려움 또한 사라지리라.”
“다시 주목 받는 것은 혁명정신에 대한 평가”
최근 10CC 청담점 전시장에서 만난 ‘멤피스 밀라노’의 알베르토 알브리치 대표는 멤피스의 귀환을 환영하는 인사에 “우린 결코 떠난 적이 없었다”며 웃었다. 1985년부터 소사스를 비롯해 “장사에는 재주가 없던” 디자이너, 장인들과 함께 멤피스 디자인 스토어에서 일해온 그는 95년 아예 회사를 인수해 멤피스 오브젝트들의 재생산을 책임져왔다. 이미 87년 해체된 디자인 운동 그룹의 상품을 만들어 파는 회사를 인수한 까닭은 오로지 그가 “젊고 순진했고 구제불능의 낙천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멤피스 밀라노, 메타 멤피스, 포스트 디자인 등 멤피스와 관련한 세 가지 브랜드를 이끌고 있다. 아래는 알브리치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전시를 둘러 본 소감은.
“30여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대중이 멤피스에 환호한다는 게 무척 감동적이다. ‘멤피스가 귀환했다’고들 하지만 정작 우리는 한번도 떠나지 않았다. 멤피스 디자인 운동은 87년 해체됐지만 실은 그간에도 가구와 램프, 여타 오브젝트의 생산은 멈춘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늘 제품을 보고 ‘이거 원작이냐 리에디션이냐’를 묻는데, 오리지널 디자인을 엄격히 유지한 제품 생산을 한번도 중단한 적이 없는 만큼 무의미한 질문이다.”
-80년대에는 옥션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멤피스 디자인 상품이 지금 다시 주목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물론 내가 일을 잘해서겠다.(웃음) 물론 당대인들의 취향에 부합하는 제품은 아니었다. 에토레 소사스조차도 사람들이 이 가구를 즐기길 바랐는데 마음 같지 않아 이렇게 한탄했었다. ‘우린 대중을 위해 디자인했는데, 결국 박물관만이 멤피스를 수용했다’라고. 지금의 주목은 당대 혁명 정신 자체에 대한 재평가라고 본다. 그냥 때가 온 게 아닐까.”
-2012년 5월 온라인 매장을 개설해 주목을 받았는데.
“물론 가구는 부피감도 있고, 실제로 봐야 구매를 확정하는 만큼 온라인 매장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도자기, 타이, 실크류의 소품들은 온라인 매장에서 꽤 성공적으로 팔리고 있다.”
-멤피스 정신이 어떻게 계승되길 바라나.
“87년 멤피스 운동을 해체하며 소사스는 ‘우린 매년 혁명을 할 순 없다’고 말했다. 혁명을 위한 혁명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후에는 81~87년 드로잉을 기반으로 한 제품은 그 원형을 유지시키며 ‘멤피스 밀라노’라는 이름의 브랜드로 별도 관리했다. 88~91년에는 유명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멤피스 정신을 이은 디자인 ‘메타 멤피스’를 선보였고, 소사스와 별도로 ‘포스트 디자인’이라는 갤러리와 브랜드를 만들어 디자인 자체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고민을 이어왔다.”
-앞으로 목표는.
“멤피스의 혁신 정신을 높이 산 여러 작업은 인상적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 움직임이 큰 유행을 타질 않길 바란다. 갑작스러운 유행으로 대량생산을 하기보다는 디자인 원형을 구현한 제품 품질을 유지하며 당대 운동의 역사성을 잃지 않는 게 더 큰 목표다. 87년 그룹 해체 이후에 소사스와 함께 한 작업들을 두고도 ‘이것도 멤피스잖아’라고 주장하면 회사가 판매고를 올리긴 더 쉬울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이런 일이다. 우리가 여전히 혁신, 자유, 유머를 추구한 81~87년의 디자인 운동, 혁명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 사고 여타 브랜드와 엄격히 분리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멤피스를 회고하고 사랑해 주는 것이 아닐까.”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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