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달랏에서 25일부터 27일까지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더 달랏 at 1200 레이디스 챔피언십’이 뉴질랜드 국가대표를 지낸 조정민(22ㆍ문영그룹)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조정민은 최종 3라운드에서 3언더파 69타를 쳐 합계 5언더파 211타로 오지현(20ㆍKB금융그룹)과 지한솔(20ㆍ호반건설ㆍ이상 2언더파 214타)을 3타 차로 제치고 짜릿한 역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번 대회는 시작 전부터 강한 바람과 해발 1,200m 고지대로 인해 늘어난 비거리가 경기력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는데요 결국 예상처럼 대부분의 선수들이 바람과 늘어난 비거리에 고전했습니다. 조정민과 오지현, 지한솔 단 3명만이 언더파를 기록했으니까요.
비거리가 늘어나고, 바람이 강한 고지대 골프장의 특성도 선수들을 괴롭혔지만 그보다 선수들을 더욱 괴롭힌 것은 바로 ‘장염’이었습니다. 대회 기간 동안 배탈과 설사 증세를 일으킨 선수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우승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혔던 고진영(21ㆍ넵스)이 가장 먼저 장염의 희생자가 됐습니다. 고진영은 1라운드 시작 후 틈만 나면 주저앉아있는 모습을 보였는데 걷는 것마저도 힘들어 보일 정도로 탈진 상태였습니다. 결국 10번 홀까지 3오버파를 치고 기권했습니다.
2라운드에서도 희생자가 나타났습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 개인전 금메달리스트 박결(20ㆍNH투자증권)도 장염 증상에 결국 기권해야 했습니다.
경기를 기권한 선수는 고진영과 박결 2명뿐이었지만 장염으로 컨디션 난조를 보인 이는 여럿 있었습니다. 특히 김보경(30ㆍ요진건설)은 경기 시작 하루 전날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습니다. 김보경은 “장염 때문에 기어 다닐 정도로 고생했는데 병원에 다녀와 조금 나아졌다”고 말했지만 남아있는 장염기 때문에 컨디션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회 취재를 위해 베트남 달랏을 찾은 기자들 중 일부도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장염 증세를 보였습니다.
KLPGA 소속 선수들이 해외에서 자주 경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년 해외로 나가 전지훈련을 하면서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을 텐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흔히 해외를 나가 생기는 장염 증상은 물갈이나 음식으로 인해 탈이 나는 경우가 많은데요 베트남 달랏에서의 장염 원인은 의외의 곳에서 나타났습니다. 바로 얼음이었습니다.
달랏의 요즘 날씨는 섭씨 13~28도로 한낮에는 더위를 느낄 정도입니다. 하지만 현지인들에게는 패딩 점퍼를 입을 정도로 추운 날씨라고 하더군요. 그러다 보니 현지 식당에서는 차가운 음료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음료수나 맥주를 주문해도 ‘뜨뜻한’ 음료수와 맥주를 내옵니다. “콜드 비어 플리이즈”를 외쳐야 냉장고에 든 맥주를 가져다 주는데 한국에서처럼 차갑다는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찾게 되는 것이 얼음입니다. 음료수나 맥주에 얼음을 넣어야 차갑게 마실 수 있기 때문인데요 이 얼음 때문에 장염이 생길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선수도 기자들도 물갈이 배탈이 나지 않도록 생수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얼음도 생수로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이미 한차례 배탈에 시달리고 나서야 알았지만 현지에서 얼음은 대부분 지하수로 만든다고 합니다. 지하수의 위생 상태는 알 길이 없죠. 심지어 호텔에서도 얼음이 다 녹은 후 얼음 통을 들여다 보니 시커먼 정체 불명의 덩어리들이 여럿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 얼음을 먹고 탈이 안 나는게 이상할 것 같더군요. 결국 얼음을 끊고 나서야 장염 증상이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베트남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이민자들이나 상사 주재원들은 외부에 나가서는 절대 얼음을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전에 이런 정보만 있었어도 장염에 시달리지는 않았겠죠. 결국 우승의 꿈을 안고 베트남까지 날아왔지만 다수의 선수들이 얼음 때문에 제 기량을 발휘해보지도 못하고 귀국해야 했습니다.
베트남 대회 기간 동안 장염 외에도 화제가 됐던 것이 VIP 식당에서 제공된 ‘악어 야채볶음’이었습니다. 악어 요리가 대회 VIP 식당에도 제공될 정도면 대중화된 음식이라는 건데 처음 맛보는 악어 요리에는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먹고 나서야 캐디가 얘기해줘서 악어 고기인 것을 알았다는 장수화(28ㆍ대방건설)는 “맛있었다”며 오히려 즐거워했습니다.
현지인들이 즐기는 음식 가운데 악어 고기는 한국인들도 충분히 ‘도전’ 해볼 만한 음식이었지만 도전 의지마저 가져볼 수 없는 음식도 있었습니다. 대회 식당에서 제공된 음식은 아니었지만 현지 식당에서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는 도마뱀 요리였습니다.
식당 한 가운데에서 껍질을 벗긴 도마뱀을 석쇠에 올려 숯불로 굽는 광경을 보며 우리가 흔히 즐기는 숯불구이를 바라볼 때의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옆에는 더욱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식재료’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물뱀이었습니다. 물뱀은 일부 현지인들이 정력보강을 위해 먹는다는데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스테미너 음식으로 꼽히는 개고기를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표정이 아마 저와 비슷했을 것입니다. 각 나라 고유의 음식문화는 존중해야 하지만 혐오 음식을 즐겁게 바라볼 수 만은 없습니다. 식당 한 가운데에서 혐오 음식을 손질하고 요리하는 모습은 더욱 불편했습니다. 물론 즐기는 이들이야 맛있는 음식을 기다리는 심정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 밖에 없는 모습이 아닐까요. 혐오감이 들 수 있는 음식이라면 즐기지 않는 이들을 위한 배려도 필요해 보였습니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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