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ㆍ4 지방선거 때 대구시장에 출마한 새정치민주연합(더민주 전신) 김부겸 후보는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활짝 웃는 사진을 넣은 플래카드를 시내 전역에 내걸었다. “대통령과 협력하여 대구 발전”이란 문구도 넣었다. 각 가정에 배포하는 선거 공보물에도 같은 사진을 담았다. 야당후보가 ‘박근혜 마케팅’에 나섰으니 이런저런 논란이 일었다. 새누리당 권영진 후보는 박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 관련 담화문을 읽으며 눈물 흘리는 사진으로 맞섰다. 김 후보는 패하긴 했어도 야당 불모지인 이곳서 40.3%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 이번에는 대구에서 새누리당 공천 갈등 여파가 박 대통령의 사진 논란으로 번졌다. 새누리당 대구시당이 컷 오프돼 무소속 출마한 유승민 주호영 류성걸 권은희 후보의 선거사무소에 박 대통령 사진을 돌려 달라고 공문을 보내면서 벌어진 일이다. 당비로 제작해 배포한 대통령 사진 액자는 당의 자산이니 돌려달라는 것이다. 새누리당 대구시당 선대위 조원진 수석부대표는 탈당한 의원들이 박 대통령 사진을 계속 사무실에 거는 것은 “대통령을 무시하는 것을 넘어 조롱하는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 하지만 집권여당으로서 졸렬하고 쩨쩨한 처사라는 지적이 새누리당 내에서도 나온다. 공문에 쓴‘대통령 존영’(尊影)이라는 표현에서는 권위주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사진반납 요구를 받은 무소속 출마자들도 순순히 응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유승민 의원 측은 이미 당선 후 복당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반납할 의사가 없다고 했고, 주호영 의원 측도 “돌려줄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권은희 류성걸 의원 측은 굳이 떼어 가겠다면 막지 않겠지만 자체적으로 박 대통령 사진을 구해서 걸 것이라고 말했다.
▦ 당사자들이 이렇게 나오니 새누리당 대구시당은 달리 취할 조치도 없어 긁어 부스럼만 만든 꼴이 됐다. 새누리당 중앙당 차원에서도 후폭풍을 우려한 듯 서둘러 수습에 나섰다. 29일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첫 회의에서 대통령 사진 반납 문제를 확대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선거를 “화합과 통합의 정신, 그리고 겸손한 자세로 치러 나가기로” 의견을 모은 마당에 무소속 후보들과 갈등을 더 확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을 대구의 특이한 상황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이계성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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