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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 칼럼] (감히) 스스로 읽으라!

입력
2016.03.29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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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누구나 읽어야 할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이란 없다.

읽기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는 ‘어떻게’ 읽는가이다. 읽기란 자기 자신만큼 읽는 것이다. 같은 책을 읽어도, 각 개개인은 자신이 지닌 가치관, 세계관, 씨름하는 물음들 그리고 살고자 하는 삶의 방향 등에 따라서 한 책으로부터 각기 다른 것들을 얻는다. 어떤 이는 니체로부터 심오한 생명철학을 찾아낸다. 반면, ‘나치주의의 공식 철학자’라고 칭송될 만큼 니체는 나치 사상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성서는 노예제도, 성차별제도, 식민주의 등을 옹호하는 것으로 쓰이기도 하고, 반대로 모든 인간의 평등성을 선언하는 근거로도 쓰인다. 왜 같은 책이 이렇게 상반된 방식으로 읽히는가. 읽기 행위란 읽는 사람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담긴 해석적 필터를 거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읽기에서 ‘무엇’보다 ‘어떻게’가 더 중요한 이유이다.

얼마 전 페이스북 CEO 주커버그의 23권의 책의 목록을 담은 ‘2015 마크 주커버그 추천도서’가 매체를 통해서 회자되었다. 대형 서점들에서는 ‘마크 주커버그 추천도서’라는 특별판매가 등장했고,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제목으로 SNS 상에서 회자되었다. 그런데 유명인사의 추천 도서목록에 소개된 책이라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도 반드시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나의 삶에 중요한 사람과의 고유한 조우가 있는 것처럼, 나와 특정한 책 사이에도 고유한 조우가 있다. 한 권의 책이란 거대한 도시와 같다. 큰 거리, 작은 골목, 유명한 장소, 무명의 장소 등 무수한 공간들이 모여있는 거대한 도시처럼, 한 권의 책은 다양한 개념들, 세계들, 가치들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나는 어떠한 문제의식과 물음들과 씨름하고 있는가가 책 읽기에서 중요한 출발점이다. ‘나만의 물음’이 부재할 때 아무리 추천도서를 모두 읽었다 해도, 자신을 성숙하고 풍요하게 할 수 있는 지적 자양분을 찾기는 어렵다.

나는 주커버그가 자신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열심히 책 읽고 토론하면서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하는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그가 2주에 한 권씩 새로운 책을 읽고자 한다는 결심으로 ‘올해의 책’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까지 만들면서 적극적인 독서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도 고무적이다. 그런데 여기에 주커버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매우 심각한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세계에서 막강한 문화권력을 지닌 주커버거가 제시하는 책의 리스트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때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첫째, 책의 위계주의이다. 추천도서목록에 포함된 책과 포함되지 않은 책들 사이에 위계가 형성된다. 둘째, 지식의 종속화이다. 유명인사의 추천도서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은, 한 개별인들이 자신의 내적 필요와 갈증에 의하여 한 권의 책과 진정으로 조우하는 과정을 생략하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만든다. 독서의 지름길이 있다고 믿게 되면서, 타자의 판단에 의해 나의 지식세계가 구성되는 것이다. 셋째, 독서의 양적 수치화이다. 양적 읽기가 읽기의 전형으로 대체된다. 한 페이지를 가지고 고민하고 씨름하는 질적 읽기는 읽기 경쟁에서 뒤떨어진다. 한 편의 시나 글을 반복하여 읽고 성찰하는 방식의 질적독서는 추천도서들을 매번 읽어내야 하는 속도를 따르기 어렵다.

권력과 지식의 중심은 일치한다. 푸코의 권력 담론이 준 중요한 통찰이다. 푸코가 ‘권력과 지식’이라고 하지 않고, ‘권력/지식’이라고 한 이유가 있다. 권력과 지식의 불가분리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이제 베이컨의 ‘지식이 힘이다 (knowledge is power)’는, 푸코의 ‘권력이 지식 (power is knowledge)이다’로 전이되었다. ‘지식’이라고 일컬어지는 요소들의 객관성, 보편성, 가치중립성이라는 지식의 자명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근원적인 인식의 전이가 요청되는 지점이다. 우리가 물어야 할 물음들은 다음과 같다: 누가 우리의 인식세계를 형성하는 지식을 생산해 왔는가; 어떤 관점이 적용된 지식인가; 어떤 가치체계를 그 지식은 개별인들과 사회 속에 확산하고 있는가.

유명인사가 만드는 도서목록의 맹신은 특정한 지식의 ‘중심화,’ 그리고 그 특정한 지식이 아닌 다른 지식의 ‘종속화’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이 세계에서 지식의 중심부와 주변부가 형성되는 인식체계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도서목록 자체가 특정한 지역(서구세계)이나 언어 (영어)를 대표하기 때문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 개별인들이 살아가고 있는 구체적인 정황, 성향, 갈망과 꿈, 지적 필요 등에 따라서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종류의 책이 필요하다. 즉 특정한 사람의 관점과 경험에서 볼 때 중요한 책이라고 해서, 그 평가에 세계적인 보편성을 적용할 수 없다. 소위 세계 일류대학에서 선정하든, 특정한 신문이나 서점이나 유명인사들이 만들곤 하는 추천도서목록들은 단지 참고용일 뿐, 절대적인 것이 안되는 이유이다.

타자가 만들어준 것이 아닌, 자신만의 고유한 주요 도서목록을 만들라. 그렇다고 해서 그 목록을 고정시켜서 절대화시킬 필요도 없다. 도서목록이란 자기 삶의 여정, 성향, 갈망, 호기심, 지적 필요 등에 따라서 언제나 바뀔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이든 음악이든 특정한 작품과의 고유한 조우를 통해서만이 자신의 내면세계를 풍성하게 가꾸게 하는 영양분을 받을 수 있다. 자신의 앎의 세계를 타자가 고안하고 지시하는 대로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지식의 종속화’를 거부하고 ‘지식의 주체화’를 이루는 것은 계몽주의의 모토, ‘스스로 생각하라’만이 아니라, ‘감히 스스로 읽으라’ (dare to read for yourself)’의 일상화를 통해서 만이다.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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