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지카바이러스 확진환자가 나왔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의학기자)
“글쎄요…….”(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
국내 지카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온 지난 22일 메르스 학습효과의 위력은 셌다. 국내 대학병원의 감염내과 전문의들은 상당수 지카바이러스에 대해 묻는 의학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별로 할 말이 없다”며 입을 꽉 닫았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 때와 180도 달라진 태도였다. 메르스 발생 초기 국내 감염내과 전문의 등은 “지역사회 전파 확률은 거의 없다” “치사율 10% 미만 일 것” “발생된 환자만 잘 치료하면 장기화되지 않을 것” 등 성급한 예측을 쏟아냈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지난해 메르스도 그랬지만 이번 지카바이러스도 우리에겐 실체가 모호한 낯선 감염병이다. 감염내과 전문의라 하더라도 그동안 단 한 번도 실제 접하거나 환자를 치료해 본 적이 없는 병에 대해 정확한 예측이나 진단을 내놓기는 어렵다. 학회와 의사들의 신중한 태도는 일견 자연스럽다.
종합편성채널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의사들이 각종 의료 관련 프로그램에 앞다퉈 나와 건강정보를 쏟아내고 있다. 사실 이런 건강정보는 암, 고혈압, 당뇨병 등으로 포털사이트 검색 만으로도 대번에 알 수 있는 것들이 적지않다. 감염병이 뭔가. 메르스, 뎅기열, 지카바이러스 등 신종 감염병은 일단 유행 하면 수백, 수천 명의 불특정 다수가 감염되면서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수 있다. 해당 질환에 대한 올바른 정보 제공을 통한 발빠른 대응이 아주 중요하다는 말이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감염내과 등 전문의들 사이에는 ‘잘못 말하면 패가망신, 잘해봤자 본전’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있다. 섣부른 예측이 전염병에서 얼마나 피해를 키울 수 있는지 뼈저리게 체험한 바 있다.
하지만 섣부른 예측과 의학적인 설명은 엄연히 다르다. 더구나 메르스 사태 이후 국민들은 알려지지 않은 위험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에 목말라 있다. 메르스 사태 당시 ‘낙타유나 낙타고기를 먹지 말라’는 황당한 예방수칙을 제시한 보건당국에 대한 믿음도 엷어졌기에 대중은 해당 분야에 정통한 전문의들의 말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라 자부하는 의사들이 “아는 것이 없다”면서 정보 제공을 주저하는 태도에 대해 ‘책임회피’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선배를 챙겨야 하는 의료계의 관행도 정보부족을 부채질하는 한 원인이다. 관련 정보나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해서 언론 등에 인터뷰나 정보를 제공하면 ‘눈치 없는 후배’ ‘선배를 무시하는 의사’ 등으로 낙인이 찍히는 경우도 있다. 한 대학병원 전문의는 “선배 의사가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데 괜히 나섰다가 혼만 난다”면서 답변을 피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신종 전염병 앞에서 침묵은 금이 아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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