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62ㆍ독일)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27일 밤 태국 방콕에서 열린 태국과 A매치 친선경기에서 1-0으로 신승했다. 내용은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현지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과 무덥고 습한 날씨, 열악한 그라운드 사정 등을 딛고 ‘안방 브라질’이라 불리는 태국을 상대로 일궈낸 값진 승리였다.
18년만의 태국 원정에서 슈틸리케호는 나름 의미 있는 수확을 올렸다. 이번 대표팀 소집 전 가장 관심을 모은 원톱 경쟁과 관련해 석현준(25ㆍFC포르투)의 성장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태국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석현준은 이정협(25ㆍ울산 현대) 황의조(24ㆍ성남FC)와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대표팀은 또 한국 축구 사상 최초로 8경기 연속 무실점 승리 와 9경기 연속 무실점 경기 기록도 달성했다.
석현준은 지난 1월 포르투갈 최고 명문 FC포르투에 입성한 뒤 확실한 주전을 꿰차지 못했다. 대부분 20분 미만의 교체 출전에 그쳐 경기 감각이 우려됐다. 대표팀 합류도 늦어 컨디션 난조가 염려됐지만 기우였다.
190cm 장신으로 제공권은 기본 옵션이고 강인한 신체능력과 파워풀한 슈팅으로 ‘정통 9번’ 스트라이커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안정적인 볼 터치와 드리블 돌파 능력까지 석현준의 존재감은 경기 내내 두드러졌다. 이를 바탕으로 태국 수비수와 경합에서 대부분 이겨냈고 득점과 연결되지 않았지만 후반에도 날카로운 슈팅으로 상대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무엇보다 석현준에게서는 골 결정력이 우수한 유럽형 스트라이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찬스 때 주저하지 않고 때리는 과감한 슛 타이밍이 돋보였다. 선제골 당시 공을 잡고 돌아서 바로 때린 강력한 중거리 슛은 물론이고 후반 들어서도 거리에 상관없이 즉각적으로 나가는 한 박자 빠른 슛이 다른 경쟁자들과 차별화를 꾀했다. 19세이던 2010년 네덜란드 명문 아약스를 무작정 찾아가 테스트를 받은 끝에 입단해 화제를 모았던 석현준이 오랜 시련을 딛고 지금까지 얼마나 잘 성장해 온지를 여실히 보여준 승부였다. 슈틸리케 감독이 원하는 이타적인 공격수의 역할에 비춰볼 때 석현준이야말로 손흥민(24ㆍ토트넘)의 파트너로 손색이 없을 전망이다.
반면 지난 24일 레바논과의 월드컵 2차 예선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슈틸리케 황태자’ 이정협은 측면과 중앙을 부지런히 오갔으나 이렇다 할 인상을 남기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이정협은 슈팅의 적극성을 보완해야 할 숙제를 안게 됐다. 두 선수에게 밀려 후반 41분 교체 투입된 황의조는 뭔가를 보여주기엔 출전시간이 짧았다.
이영표 KBS 축구 해설위원은 “석현준은 슈틸리케 감독이 자신을 선발 출전시킨 이유에 대해 정확하게 부응했다”며 “볼이 자신에게 들어왔을 때 키핑하는 능력, 수비가 밀고 나왔을 때 뒷공간을 뚫고 들어가는 위협적인 움직임이 몇 차례 나왔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번 태국전에서는 고명진(28ㆍ알라이안)의 재발견도 슈틸리케호의 큰 수확 중 하나였다. 슈틸리케호에 처음으로 합류한 고명진은 전진 배치된 기성용(27ㆍ스완지시티)의 자리에 선발로 나서 활발한 활동량으로 합격점을 받았다. 전반 5분 석현준에게 찔러준 결승골 어시스트는 백미였다. 아울러 침착한 볼 컨트롤과 패스로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기성용의 잠재적인 대체자로 눈도장을 받았다.
정재호기자 kem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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