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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이야기의 깊이가 예술의 높이다

입력
2016.03.2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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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윤수일의 노래를 들으면서 말로는 다 못할 감동을 받았다. 올해 그는 노래인생 40년을 맞았다. 다문화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던 시절, 윤수일은 세상이 자기에게 남긴 울분을 삼키며 오직 노래에만 매달렸다. 그의 등 뒤에는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힘을 준 단 하나의 버팀목, 어머니가 있었다. 황홀한 목소리, 겸허한 자세, 빼어난 외모의 그가 ‘사랑만은 않겠어요’라는 곡과 만났을 때 온 나라가 열광했다.

정상의 가수가 되자 이제 마음이 놓인다는 듯 어머니는 급속히 기력을 잃어갔다. 어느 날 병실에서 그는 어머니의 귀에 대고 나지막이 ‘사랑만은 않겠어요’를 불렀고, 어머니는 아들의 노래를 들으며 길고 길었던 인생의 커튼을 닫았다. 아마도 그는 이후 무대에서 수천 번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어머니를 떠올렸을 것이다. 이후 그는 수많은 히트작을 내놓으며 거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예술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멤버들. 1996년 미국의 레코딩 프로듀서 라이 쿠더가 그들을 하나하나 찾아낼 때까지 그들은 구두를 닦거나, 머리를 자르거나, 그리고 무용학원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그들이 부르는 가사는 시를 넘어섰다. 이브라힘은 노래한다. “내 슬픔을 꽃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내 눈물을 보면 죽어 버릴 테니까.” 그 동안 쓸쓸한 그늘의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말을 꽃에게 건넸을까. 그만큼 고독이 파준 인생의 깊이는 컸다. 이브라힘은 구두를 닦으면서 출근하는 회사원, 결혼식장에 가는 부모, 꽃을 들고 사랑을 고백하러 가는 청년과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그들의 일상은 이브라힘의 노동으로, 이브라힘의 말소리는 그들의 마음에 젖어 갔을 것이 분명하다.

아이들의 발동작을 따라가던 곤잘레스의 피아노 소리는 어린 무용가들이 나중에 커서야 깨닫게 될 예술의 맛을 미리 전해주었을 것이다. 콤파이한테 머리를 깎았던 사람들은 머리를 쓸어 넘길 때마다 기타 소리를 들었을지 모른다. 그들이 살아온 모든 이야기는 노래에 스며들어 세계인의 마음을 흔들었다.

자신의 예술을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자기가 만든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가는 사람이 없다고 절망하는 사람이 많다. 세상이 그들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은 운이 닿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야기가 쌓이지 않아서다. 우물에 물이 고이지 않았는데 누가 두레박을 던지겠는가.

최근 우후죽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생겨났다. 노래에 조금 소질이 있는 청소년이라면 저마다 ‘가수나 한번 해볼까’ 생각해볼 것이다. 우리는 그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저 중에 10년이 지나면 가수로 남아있을 사람이 몇 안 될 거라는 사실을 안다.

요즘 인기 절정의 한 트로트 가수는 무명시절에 소규모 슈퍼마켓에서 노래를 많이 불렀다고 한다. 원래 계약상 노래하면서 흥을 돋우는 역할만 하면 됐지만, 흥겨운 노래를 들은 사람들이 이 가수가 있는 판매대에 자꾸 몰려들어 물건을 사기 시작했다. 내친 김에 그는 가수의 본분을 잊고 그 어떤 점원보다 많은 물량을 팔아 치우는 기록을 날마다 갱신했다. 슈퍼마켓 사장으로부터 보너스를 두둑하게 받은 건 물론이고, 입소문을 타고 그를 전국에서 불러댔다. 때때로 굴욕의 눈물을 삼키며 부른 노래들은 그를 어떤 무대에서도 황홀한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 만들었고, 마침내 그는 정상에 섰다.

세상과 사람과 자기 앞에 놓인 예술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 결국 노래의 신이 되지 않을까. 노래의 신? 그렇다, 노래하는 사람은 신의 영역을 조금 갖고 있어야 한다. 기술적으로 잘 하는 것뿐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닿을 수 없는, 태초의 암흑 같은 고독의 이야기들을 가사와 음으로 뿜어낼 수 있어야 한다.

저 위대한 가수들의 노래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위로와 힘을 받는다. 우리 또한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노래를 들려주어야 한다.

제갈인철 북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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