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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참여하고 요구해야 바뀐다

입력
2016.03.2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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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미국의 월스트리트 점령운동과 영국의 청년폭동은 그 원인이 같았다. 상위 1%가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세상살이의 출발점, 과정, 결과가 너무나도 불평등한 것에 대한 불만의 폭발이었다. 경제학자들은 오랫동안 낙수효과라는 ‘메시아’의 도래를 선전했다. 그러나 그 메시아는 오지 않았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교수는 ‘자유주의자의 양심’(2007년)이라는 저서에서 낙수효과는 거짓말이라고 단언했다. 경제학적 논리를 떠난 정치적 선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국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세칭 금수저들은 혼맥ㆍ학맥ㆍ금맥의 동심원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겹겹이 쌓아간다. 그 정점에는 재벌의 2세, 3세가 있다. 비상장주식의 양도, 부당한 내부거래 등 각종 편법을 통해 손쉽게 막대한 재산을 마련한다. 주력업종만이 아니다. 호텔업, 광고업, 패션사업, 건설업, 백화점, 심지어는 동네빵집과 길거리커피숍까지 다 장악했다. 대다수의 서민들은 그들의 승승장구를 부러움과 자괴감으로 바라본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은 그들과는 너무나도 차이가 나는 우울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 어떠한 통계를 열거해도 이 추세에는 변함이 없다. 소득불평등의 증가,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 비정규직 비율의 증가, 가계소득과 기업소득 간의 격차확대, 절대빈곤율의 상승 등 한국 땅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중산층이 몰락하고 빈곤이 대물림되는 세상이다.

문제가 심각하니 이에 대한 해법 또한 당연히 논의된다. 공교육의 강화, 청년일자리 확대, 공공주택의 보급, 보육시설의 확대 등 소위 흙수저 대책은 많다.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비업무용 계열사주식의 보유금지 등 대기업의 부당내부거래 및 지배구조 민주화를 위한 대책 또한 구체적이다.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도 거의 모두 동의한다. 그러나 말일 뿐이다. 복지는 재원부족이라는 이유로 뒤로 밀리며, 재벌개혁은 경제살리기란 미명하에 좌절된다. 그러다 선거 때만 되면 유령처럼 나타난다. 경제민주화도 복지도 한국에서는 선거 때만 출몰하는 ‘임시직’ 유령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정책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 정책을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이다. 청년실업률은 이미 12%를 넘어섰다. 청년들이 일자리창출에 대해 강력히 요구하지 않는 한 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빈곤층 비중이 50%를 넘어선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전세 값에 등골 휘는 무주택자 또한 그렇다. 노인연금과 공공주택 확대를 강력히 요구하지 않는 한 정책은 언제나 후순위로 밀려난다. 언젠가 좋아진다는 막연한 믿음, 그거야 말로 가장 순해빠진 것이다. 생각해보면 프란체스코 교황께서도 같은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취임 이후 첫 공식문서였던 ‘복음의 기쁨’(2013) 제54항에서, 낙수효과를 믿는 것은 지금의 주류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의 ‘선의’를 믿는 아주 ‘순해빠진’(naive)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금수저 흙수저를 넘어서 출발점의 격차를 줄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도 보장해야 한다. 복지 또한 확대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기득권층의 ‘선의’에 의해서 실현되지 않는다. 그것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서 세상은 바뀌는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각자의 투표권 행사는 기본이다. 그러나 1회성 투표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다. 보다 조직적이며 지속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서로 모여 토론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단체 혹은 정당에 가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복지가 필요한 사람은 복지를 강조하는 정당에,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정당에 투표하면 좋다. 그러나 한 가지 만은 참고하길 바란다. 규제완화, 감세를 이야기 하는 사람, 낙수효과를 강조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일자리와 복지를 제대로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김종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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