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3 총선을 앞두고 서울 광화문광장(KT 앞)에 선거사무소가 하나 생겼습니다. ‘정치 1번지’ 종로에 출사표를 던진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의 선거 캠프입니다.
보통 선거사무소는 목 좋은 곳에 자리잡은 화려한 사무실에다 후보의 웃는 얼굴 사진과 이름이 크게 적힌, 주변 간판들을 제압하는 거대한 현수막을 내걸고 있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이 선거사무소는 ‘텐트’입니다. 위치는 좋아서 많은 사람들 눈에 띌 수는 있겠습니다만, 반투명 비닐 벽 안으로 내부 집기들이 어지럽게 보이고 해서 언뜻 보면 시위대 숙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엄연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사무실’입니다.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72. 주소도 있습니다.
누추하게 보인 탓인지, 그래서 다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봤던지 지난 24일 설치 직후 경찰이 나타나 텐트 주변을 지키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책장 등 집기 반입을 막았고, 가방은 물론 A4같은 종이도 반입을 막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헌법기관인 선관위가 공식 선거사무소로 인정한 마당에 더 이상 감시할 명분이 없다고 봤는지 27일 오전 경찰들은 철수했고 이날 저녁 조촐한 개소식도 가졌습니다.
그나저나 하 후보는 어떻게 해서 텐트 선거 사무소를 차렸을까요. 선거법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앞서 그는‘500만원으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공언한 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무소를 구하지 않고 거리에서 선거운동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본선거운동 때에는 선거사무소를 둬야 한다는 선거법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텐트를 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수 천 만원의 보증금에 월세로 수 백 만원씩 내는 사무실이 부지기수인 상황에서, 500만원으로 선거를 치르겠노라 큰 소리 쳤으니 길가로 나앉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분석입니다. 텐트 선거사무실을 설치하면서 하 후보는“돈 많이 들어가고 거대 정당 후보자들에게만 유리한 선거시스템에 항의하는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만,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배출 목적도 있었다는 겁니다. 실제 오세훈, 정세균 등 거물급 정치인들이 같은 종로구에 출사표를 던진 상황에서 하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한 점도 그 이유로 꼽힙니다. 종로구 선거운동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홍보활동을 펼칠 것인 만큼 당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비례대표 의원까지도 배출해보겠다는 겁니다.
하 후보의 선거사무소와 같은 천막 선거사무소는 여기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유는 다르지만 제주도에도 있습니다. 부상일 새누리당 후보가 뛰고 있는 제주을 지역으로, 제주시 인제사거리 근처에 있습니다. 아파트 2층에 육박하는, 5m 높이의 몽골텐트 6동으로 된 거대한 텐트 입니다. 현수막 설치를 위한 구조물까지 따로 세운 터라 녹색당 하 후보의 그것과 달리 야전사령부로 보일 정도입니다. 캠프 관계자는 “더 낮은 자세로 도민과 소통하기 위해 텐트를 쳤다”며 “비용도 일반 사무실을 임대했을 때 대비 3분의 2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같은 텐트 모양의 선거 사무소이지만 광화문 텐트와 제주 텐트는 규모 면에서 차이가 눈에 띕니다.
또 이 같은 천막 캠프는 이번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12년 19대 총선 당시에는 경북 포항에서 이 같은 텐트 선거 사무소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후보가 인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것으로 역시 몽골텐트 9동을 연결한 거대한 텐트 사무실이었습니다.
각자 텐트 선거사무소를 차린 이유가 무엇이었던 간에, 하승수 후보의 주장은 다시 한번 곱씹게 됩니다. “거대정당 후보들은 선거비용을 보전 받기 때문에 비싼 사무실을 빌리고 거대한 현수막을 붙인다.” “소수정당 후보자들은 방송토론회에도 나가지 못한다. 비전과 정책이 있어도 알릴 기회조차 제한 받는다.”
정민승기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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