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가 쓴 신생업체 대부분 탈락
재입찰 불이익 우려 항의도 못해
업체들 학교장 개입설까지 제기
“가장 낮은 가격을 써서 내면 뭐합니까. 위탁실적이 별로 없다고 1차 서류심사에서 떨어뜨리는 바람에 2차 심사(가격경쟁)는 참여도 못했습니다.”
지난달 이뤄진 2,500만원 규모의 한 초등학교 방과후학교 위탁업체 공개입찰에 참여했던 위탁업체 A사 대표(42)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올해부터는 최저가격 낙찰제가 의무인 조달청 시스템으로 공모한다고 해 학교가 공지한 금액(기초금액)의 88%를 써냈지만, 1차 서류심사에서 떨어졌다”며 “어떤 부분에서 서류점수가 미흡했는지 알고 싶어도, 내년 다시 입찰을 해야하는 을(乙) 입장에서 심사과정 공개를 요청하기도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방과후학교 위탁업체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2006년 본격화된 초등학교 방과후학교는 대부분 위탁방식으로 이뤄지고 학교별로 공모하는데, 불투명한 계약관행으로 뒷말이 끊이지 않았다. 2014년 감사원의 지적까지 받자 교육부와 교육청은 ‘방과후학교 운영 길라잡이’와 ‘2016 방과후학교 운영 가이드라인’을 바꿔 올해부터 조달청 나라장터를 통한 경쟁입찰제를 의무화했다. 업체가 나라장터를 통해 각 학교에 제안서를 내고, 학교 평가위원회가 업체의 용역 수행 실적, 경영상태, 인건비지급 계획 등을 검토해 2~4개 업체를 추린 후, 이들 중 최저입찰가를 써낸 업체를 낙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업체들은 1차 서류심사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등 제도에 허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1억원대 규모의 한 초등학교 방과후학교 입찰에 참여했다가 1차 서류심사에서 탈락한 B사 관계자는 “최종 낙찰을 받은 업체는 (우리 업체와) 비슷한 시기에 설립돼 위탁실적도 대동소이했다”며 “결과를 납득할 수 없었지만 다음 입찰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학교 측에 별다른 항의를 못했다”고 말했다.
업체들은 심사내용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을의 처지를 학교측이 악용해 1차 서류심사에 개입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B사 관계자는 “기초금액의 90% 이하를 제안하고도 서류심사에서 떨어졌는데, 경영상태가 비슷한 다른 업체는 94%로 제안해 최종낙찰을 받았다”며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보니 ‘○○학교장과 ○○업체 사이에 유착관계가 있다’는 식의 소문이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고 귀띔했다.
학교들은 “유착관계는 사실무근이고 문의만 하면 심사과정에 대해 설명한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이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사정을 모르거나, 모른 척하는 것이라고 업체들은 반박한다. 말만 경쟁입찰이지 기존의 학교별공모 방식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최저입찰가를 제시한 중소업체들은 대부분 1차 서류심사에서 떨어지고 몇몇 굵직한 업체들이 높은 입찰가로 사업을 사실상 과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나라장터에 공개된 서울시 소재 초등학교의 방과후학교 사업 낙찰가를 분석한 결과, 최근 3개월간 최종 사업자로 선정된 521개 업체 중 절반 가까운 244개 업체가 기초금액의 90%가 넘는 금액을 사업운영비로 제안했다. 97% 이상의 가격을 써내고도 사업자가 된 업체도 52개나 됐다. 방과후학교 사업규모는 서울시만 해도 수백억원대로 추산된다.
이처럼 업체 선정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자 서울시교육청은 다음달부터 학교와 업체를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하지만 업체와 학교측의 유착관계를 밝혀낸다 해도 처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관련 법률과 조례가 없어 교육부 ‘초ㆍ중등교육과정 총론’(고시)과 ‘방과후학교 운영 길라잡이’(가이드라인)를 근거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며 “처벌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다른 법률로 제재할 수 있는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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