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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농토 사냥하는 글로벌 자본… 원주민들은 난민 신세

입력
2016.03.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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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곡물 가격 급등에 ‘랜드러시’

광대한 땅 장기임대해 기업형 농업

자본과 농업현대화 원하는 현지 정부

때때로 폭력 동원 원주민 강제이주

에티오피아선 수백명 사살 논란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벼가 무르익은 황금빛 들판은 풍요로워 보였다. 끝없이 펼쳐진 1만4,000헥타르의 평원을 누비는 몇 대의 콤바인들은 갖가지 품종의 탈곡된 벼를 토해내기 바쁘다. 농장 관리인 베들루(40)씨는 “땅이 너무 비옥해져서 다시 비가 오기 전에 어서 수확하고 새로운 작물을 심어야만 한다”며 두 손 가득 곡물을 담아 보였다.

농업대국인 미국이나 중국의 모습을 상상하기 쉽지만 풍요로운 기업형 농업이 벌어지고 있는 이 현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아프리카다. 그것도 2,000만 명의 국민이 하루 1.25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는 에티오피아. 이례적인 엘니뇨로 대기근을 겪는 에티오피아지만 서부 끝자락에 위치한 감벨라 주만큼은 강수량이 풍부해 기업형 농업을 꿈꾸는 세계자본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세계자본의 대규모 농지 투자, 즉 랜드러시(land-rush) 이면에는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밀려나는 원주민들의 눈물이 서려 있다. 현지 정부는 농업 현대화라는 미명하에 폭력까지 동원해 원주민을 몰아낸 뒤 세계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21세기형 제국주의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라고 고발했다.

고수익 농지 향해 달리는 세계 자본

축복의 땅 감벨라가 전세계 랜드러시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영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해외 투자자들이 농지를 향해 몰려가고 있는 현상을 19세기 미국의 골드러시에 비유해 랜드러시라 명명하고 세계 랜드러시 현장을 소개했다.

땅을 찾아나서는 기업은 미국계가 가장 많다. 국제 공공데이터베이스 랜드매트릭스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외국 기업이 전세계에서 200 헥타르 이상의 토지를 사들인 건수는 모두 1,100건, 규모로는 4,000만헥타르에 달했다. 이 가운데 14.6%가 미국계였다. 2007년 곡물가격이 급등한 데 이어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세계 자본이 고수익 투자처로 아프리카, 동남아의 땅을 찾고 있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를 두고 해외 투자자들이 쌀을 수입하는 게 아니라 직접 재배를 통한 수익을 노리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에티오피아 감벨라를 손에 넣은 기업은 식품회사인 사우디스타농업개발(사우디스타). 사우디아라비아계 재벌인 모하메드 알 아무디가 소유한 사우디스타는 2009년 에티오피아 정부로부터 감벨라 지역의 대규모 농지를 50년간 사용하는 조건으로 임대 받았다. 축구장 2만여 개 규모의 땅을 벼 재배에 적합한 형태로 다지는 데만 2억 달러를 투자했다. 막대한 초기 투자를 거친 사우디스타 농장에선 인도와 파키스탄으로부터 들여온 쌀 종자를 저렴한 국내용, 고품질 수출용 등으로 변형한 62개 품종의 벼가 자라나고 있다.

에티오피아 이웃 국가인 남수단 역시 랜드러시가 한창이다. 이집트계 투자회사인 시타델 캐피탈은 2009년 남수단 북쪽에 위치한 그윗 및 파리앙 주의 10만5,000헥타르 규모 농지를 임대했다. 유럽투자은행(EIB),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등 다수의 국제금융기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시타델 캐피탈은 임대 이후 농지를 작물 수확 단계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연 1,000만 달러의 대규모 투자를 퍼붓고 있다.

지난해 12월 에티오피아에서 쫓겨나 몰타 수도 발레타로 이주한 오로모족이 유럽연합(EU)에 자국 정부에 대한 지원 중단을 요구하며 손에 쇠사슬을 묶은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지난해 12월 에티오피아에서 쫓겨나 몰타 수도 발레타로 이주한 오로모족이 유럽연합(EU)에 자국 정부에 대한 지원 중단을 요구하며 손에 쇠사슬을 묶은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주민 몰아내고 투자자 모시는 정부…폭력 동원 논란

세계자본을 아프리카와 동남아 저개발 국가로 인도하는 첨병은 현지 정부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전국 250만 헥타르의 농지를 전세계 임대 시장에 내놓았다. 외자를 끌어들여 농업 현대화를 이루는 동시에 농작물 수출을 늘리려는 목적으로 1헥타르 당 연 3달러 미만의 저렴한 임대료를 조건에 내걸었다. 인도, 중국 등 50명 이상 거부들이 에티오피아로 몰려들었다. 그 외 다수의 거래가 토지 소유주체와 상관 없이 투자회사와 정부 간 이뤄졌다.

원주민들의 무지를 이용해 토지거래를 진행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미국계 투자회사인 나일 트레이딩 앤 디밸롭먼트(NTD)는 2008년 3월 남수단 레인야 주 인근 60만 헥타르 규모 농지를 49년 간 사용하는 조건으로 무카야지역협동조합과 거래했다. NTD는 "협동조합은 NTD가 남수단의 법에 따르는 한 어떤 용도로 땅을 사용하든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따낸 뒤 무차별 벌채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세계적 기업들의 랜드러시는 현지에서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특히 기업형 농장에 땅을 빼앗긴 채 유랑 보따리를 싸는 원주민들의 꼬리가 길어지면서 아프리카 등에서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들도 각국 정부가 농업 현대화를 명목으로 폭력까지 동원해 임대 지역의 원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강제이주시켜 왔다고 비판하고 있다.

감벨라의 경우 본래 에티오피아와 남수단에 걸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인 아누아크족의 주거지다. 하지만 이곳에선 정부가 기업형 농업을 유치하면서 노동력으로 사용할 ‘하이랜더(고지대에 사는 사람)’들을 이주시킨 이후 아누아크족과 갈등이 시작됐다. 처음 갈등이 불거진 2003년 12월 에티오피아 정규군과 하이랜더들은 아누아크족 마을을 습격해 424명의 부족민을 사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2003년부터 고향을 빠져나온 아누아크족 주민들의 빈자리는 투자회사와 타지역 출신 노동자들이 차지했다. 최근 감벨라에서 도망쳐 케냐 나이로비에서 난민 생활을 하고 있는 아콧 아드홈씨는 현재 누가 땅을 통제하고 있냐는 질문에 단번에 “알 아무디”(사우디스타 소유주)라고 답했다.

대규모 기업-국가 간 토지 거래를 연구하는 로렌조 코툴라 영국 국제환경개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투자가들에게 땅은 부동산일 뿐이지만 지역민들에게 땅은 생존과 직결된다”고 호소했다. 토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는 영국계 비정부기구 글로벌위트니스(GW) 관계자 역시 "외국 자본이 인권침해 상황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으며 그 힘은 정치권과도 관련 있다"고 말했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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