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말, 미국 라디오에서는 케이트 스미스가 부르는 ‘God bless America’가 지겹도록 흘러나왔다. 그러나 축복받은 미국이 그들의 나라가 아닌 사람들이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미국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 젊은 청년이 “이 땅은 바로 너와 나의 땅”이라고 말하는 노래를 불렀다. 그는 풍요로운 미국의 축복이 미치지 않던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이 나라가 그들의 땅임을 선포했다. 그는 미국 사회 민중의 노래를 모으고 그들의 입이 되었다.
1935년 공황기에 먼지 태풍으로 황폐화된 보금자리를 버리고 오클라호마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는 긴 여행 동안 그는 가난한 농민들의 노래를 모으고 그들의 노래를 불렀다. 1940년 동부로 이주한 후에는 노동자의 권익과 인권을 위해 노래했고, 파시즘에 맞서 싸웠다. 그의 기타에는 “이 기계가 파시스트를 때려 잡는다(This machine kills fascists)”란 구호가 붙어있었다. 사람들은 뉴욕 맨해튼 이스트빌리지의 허름한 선술집 맥솔리스에서 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그를 볼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우디 거스리였다.
민요유전과 인생유전
1940년 캘리포니아에서 뉴욕으로 건너간 우디 거스리는 노동자들을 위한 콘서트와 방송출연을 하면서 작곡과 녹음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친다. 피트 시거를 만나 얼머낵 싱어스를 결성하고 반전, 반인종주의, 노동자를 위한 노래를 불렀다. 전쟁이 끝나고 우디 거스리는 가족과 함께 코니아일랜드에 정착하였다. 그는 1950년 브루클린의 트럼프 아파트에 세입자로 살았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임대인은 부동산 재벌이자 현재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트럼프의 아버지였다.
트럼프 아버지의 이름이 당연히 트럼프였듯이, 트럼프의 유산이 아버지의 유산이듯이, 아버지 트럼프도 부동산 임대로 돈을 벌고 있었고 인종차별 행위를 스스럼없이 저질렀던 모양이다. 거스리는 1930년대 ‘모래 바람(Dust Bowl)’ 시절에 부른 ‘I Ain’t Got No Home(이 세상에 이제 내 집은 없네)’에 “비치 헤이븐에 내 집은 없네… 오오 늙은 트럼프”라는 가사를 추가했다. 비치 헤이븐의 임대 주택에 흑인 입주를 용납하지 않았던 트럼프의 인종 차별을 노래 가사로 비판한 것이다. 그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유전병으로 오래 앓다가 1967년 7월 인생을 마쳤다. 민요와 인생은 그렇게 유전되며 다시 흘렀다.
20세기의 음유시인은 무엇을 노래했는가
우디 거스리는 1912년 오클라호마의 작은 도시 오키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헌팅턴 무도병이 발병하여 병원에 입원하였기에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 어렵고 고통스런 환경에서 자란 그는 가난 속에서도 자유와 평등을 갈구하였다. 대공황기에는 오클라호마 빈농들의 어려운 삶을 노래했고, 1940년대에는 노동자들에 대한 권력과 자본의 폭력을 비판했다. 그는 일상에서 자연스레 불리던 민요에 현장성과 저항성이란 심장을 달아준 음유시인이었다.
‘1913 Massacre(1913년 대학살)’이란 노래에서 우디 거스리는 덤덤하게 1913년 노동자 파티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노래한다. 1913년 미시건 주 캘루밋의 구리 광산촌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켰다. 크리스마스 시즌 파업 중,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행복한 파티장에 자본의 개와 이리 떼들이 습격한다. 광산주와 청부 폭력업자들이 문을 잠근 채 ‘불이야’를 외쳤다. ‘불이야’ 소리에 놀란 아이들이 일층으로 내려와 바깥으로 도망가려 했으나 문은 잠기고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그날 질식과 압사로 73명이 죽었다. 피아노는 슬픈 장송곡을 연주했고 부모들과 광부들은 슬피 울었다. 그는 노래로 폭로한다. “돈에 대한 탐욕이 어떤 일을 저질렀나 봐라.”
우디 거스리와 피트 시거, 그리고 밥 딜런
우디 거스리의 노래는 한 젊은이를 사로잡았다. 그때 거스리는 헌팅턴 무도병을 앓고 있었다. 1961년 시골서 뉴욕으로 올라온 19살 청년 밥 딜런은 거스리가 요양하고 있던 병원을 방문하여 병상에 누운 그를 위해 노래 몇 곡을 불렀다. 거스리를 앙모했던 밥 딜런은 1962년에 이 노래의 곡에 자신이 쓴 가사를 얹어 ‘Song to Woody(우디에게 바치는 노래)’라는 곡을 만들어 거스리에게 헌정하였다.
젊은 밥 딜런은 우디 거스리를 이어 1960년대 포크 음악에 다시 젊은 피를 흐르게 하였다. 우디 거스리와 피트 시거, 밥 딜런으로 흐르던 포크송은 결국 같은 피의 자식이었다. 수십년이 지난 이제 포크송은 젊은이의 노래가 아니라 늙은이들의 ‘올디스 벗 구디스’로 나이를 먹어간다. 현장에서 살아있지 못하고, 힘있는 자들에게 대적하지 못하고, 향락에 빠진 우리에게 진정한 포크송은 더 이상 없다. 그래서 물어봐야 한다. ‘늙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가를’. 그리고 기도하고 움직여야 한다. ‘영원히 젊음을 가질 수 있기를’.
우디 거스리는 항상 젊었던 바로 그 사람이다. 부정의한 현실에 반항하고, 어려움에도 낙담하지 않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사랑했고, 그들과 함께 하였다. 2012년 청년보다 더 젊었던 92살의 피트 시거는 그가 지도했던 아이들(The Rivertown Kids)과 함께 밥 딜런이 만든 젊음에 대한 송가를 불렀다. 밥 딜런이 1974년에 발표한 ‘Forever Young(영원히 젊음을)’은 어쩌면 늙어가는 포크송 세대에게 미리 바친 애가일지도 모른다.
Forever Young
May God bless and keep you always
신이 너를 축복하고 항상 지켜주기를
May your wishes all come true
네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May you always do for others
항상 남을 위해 일하기를
And let others do for you
모든 이들이 너를 위하기를
May you build a ladder to the stars
네가 별들에게 사다리를 놓도록
And climb on every rung
그리고 하나하나 밟아 오르기를
May you stay forever young
항상 젊음 속에 머무르기를
Forever young, forever young
영원히, 영원히 젊음을
May you stay forever young
영원히 젊음을 간직하기를
May you grow up to be righteous
네가 정의롭게 자라기를
May you grow up to be true
진실되게 크기를
May you always know the truth
항상 진실을 알아차리기를
And see the lights surrounding you
네 주변의 빛을 보기를
May you always be courageous
언제나 용기롭기를
Stand upright and be strong
바로 서고 힘차기를
May you stay forever young
영원한 젊음이기를
Forever young, forever young
영원히, 영원한 젊음이기를
May you stay forever young.
영원한 젊음이기를
May your hands always be busy
네 손이 언제나 바쁘기를
May your feet always be swift
네 발이 분주하기를
May you have a strong foundation
굳건한 주춧돌 위에 서있기를
When the winds of changes shift
변화의 바람이 몰아칠 때
May your heart always be joyful
네 마음이 항상 기쁘기를
And may your song always be sung
사람들이 항상 네 노래를 부르기를
May you stay forever young
네게서 젊음이 떠나지 말기를
Forever young, forever young
언제나 젊음으로, 젊음으로
May you stay forever young.
영원한 젊음이기를
백욱인 한국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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