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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귀신 돼서도 농사짓겠다는 鬼農 각오하시길”

입력
2016.03.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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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ㆍ귀촌 캠프 특강 제의 받았는데

그냥 내 얘기를 하는게 낫겠다 싶어

귀농은 부딪치고 엮이고 굴러야

억대 매출은 절대 꿈꾸지도 마시길

농사는 실패할 확률 높으니

최소한 3년은 땅 사지 말아야

살다보면 어떻게든 살아져요

쓰는 만큼 못 버니 맞춰 쓰세요”

트랙터를 가진 친구가 농장의 밭을 갈아주고 있다. 겨울을 지내며 버려진 땅처럼 황폐해 보이던 밭이 곱게 새 옷을 입는다. 매화나 산수유 축제는 비가 와서 쉬는 날에나 가 보는게 대부분이다.
트랙터를 가진 친구가 농장의 밭을 갈아주고 있다. 겨울을 지내며 버려진 땅처럼 황폐해 보이던 밭이 곱게 새 옷을 입는다. 매화나 산수유 축제는 비가 와서 쉬는 날에나 가 보는게 대부분이다.

고라니가 멈춰 섰다. 나도 급하게 트럭을 세웠다. 놈은 길을 막아 선 채 제 뒤편 산등성이를 보고 있었다. 어쩌다 일찍 터진 산 벚꽃이 보였다. ‘쟤도 꽃구경인가’ 싶었는데 작은 고라니도 한 마리 튀어 올랐다. 다시 돌아보니 정면의 그 놈은 버틴다는 느낌으로 계속 나를 꼬나봤다. 이내 작은 고라니가 지척으로 다가오더니 함께 박자를 맞추며 마른 논으로 튀며 골짜기로 사라졌다. 모든 게 정지한 듯한 짧고 긴박한 순간, 내 눈엔 화사한 꽃들이 들어왔고 녀석의 눈엔 새끼만 보였을 거다. 빗 속에 아름답던 꽃 대궐과 꽃보다 화려하게 입은 사람들 차림에도 이 시기는 어느 누군가 에겐 위기일 지도 모르겠다. 다시 트럭을 움직였다. 나도 살아야 한다. 오늘은 기필코 감자를 심어야 하니.

후진으로 들어가며 거울로 본 농장 저 쪽에 간전댁할머니가 보였다. 2003년 형 시끄럽기로 소문 난 트럭인데 할머니는 쳐다보시지도 않는다. 3보 앞으로 다가가 “또 걸어오셨어요? 언제 오신 거예요!” 큰 소리로 여쭈니 또 동문서답이다. “삼동에 풀 맨다고 겨울에도 뽑았어야는디 이걸 어쩌끄나” 양파 밭에서 굽혀진 허리는 놔두고 고개만 돌리셨다. 화가 난 척을 하려고 아무 말씀도 안 드리고 가만히 있으니 할머니가 말씀을 이으셨다. “선재네 오늘 감자 심는 다두만요. 걍 와보고 자서(싶어서)……” 일부러 말씀 안 드렸는데 자체 정보망으로 알아내셨다. 몰래 장난치다 걸린 아이처럼 웃으셨다. 여든 세 살 귀요미다. “요기 봐요, 풀 들이 나 좀 봐줘요 허네.” 말씀 중에도 할머니 호미는 계속 움직였다. 결국 패배를 선언했다. 오시고 싶으면 차로 모시고 올 테니 말씀하기로 약속했다. 단, 왔다 가시는 시간은 내 맘대로 하기로 했다. 할머니는 모처럼 활짝 웃으셨다.

전날 친구가 트랙터로 갈고 간 밭은 매트리스처럼 도톰하고 폭신했다. 줄을 띄워 고랑을 표시하고 그 사이에 감자 놓을 곳을 표시했다. 할머니가 반대편에서 씨 감자를 들고 나섰다. ‘분홍신’을 신으셨나 했는데 맨발이셨다. “할머니 발 다치시면 어쩌려구요!” 소리질렀더니 “괜찮아요. 시원하고 좋구만” 하셨다. 그새 봄다운 해가 중천이었고, 나도 이미 흠뻑 젖었다. 며칠 볕이 좋더니 얼굴은 물 적신 흙빛으로 변했다. 누구는 날 보고 “컨셉 아니야?” 물었다. 일부러 얼굴을 태우냐는 거다. 환장하겠다. 웬만한 모자 챙으로는 다 가리기 힘든 얼굴이라 그런 건데 억울하다. 그리고 태워서 뭐가 나아져야 컨셉트고 나발이고 하지, 이젠 구례에서 제일 촌스러운 친구한테 촌놈 소리 듣는 판에 얼굴 태닝해서 뭔 효과를 보겠냐 말이다.

보아하니 작년에 검어진 얼굴이 겨우내 80퍼센트쯤 회복하고 다시 그을러 진다. 매년 20퍼센트씩 색이 짙어지니 앞으로 10년이면 한국말 잘하는 흑인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 ‘봄볕에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 볕에 딸 내보낸다’는 말이 있다. 봄볕은 독하고 가을볕은 몸에 좋다는 이유다. 빨리 며느리 보기 전엔 해답이 없는데 아들 놈은 여친도 없으니……

친구가 비닐하우스에서 감자를 수확하는 날 일하러 오신 분들이 감자를 선별하고 있다. 겨우내 애써 키운 작물을 수확하는 기쁨은 크지만 수입은 항상 기대에 못미친다.
친구가 비닐하우스에서 감자를 수확하는 날 일하러 오신 분들이 감자를 선별하고 있다. 겨우내 애써 키운 작물을 수확하는 기쁨은 크지만 수입은 항상 기대에 못미친다.

관리기 날을 구굴기로 갈고 고랑 작업을 준비하는데 전화가 울었다. 귀농 귀촌 캠프를 운영하는 단체였다. 며칠 전에 캠프에 와서 얘기 좀 해달라고 해서 일단 승낙은 했다. 시간과 장소를 확인해주는 전화였다. 강의는 아니고 그냥 얘기만 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무슨 얘기를 해야 할 지는 아무 생각이 없다. 내려오기 전에 귀농학교 다니면서 배운 것쯤은 참가자들도 다 알고 있을 것 같다. 귀농의 색깔이야 저마다 다른데 좋다 나쁘단 말도 의미가 없다. 그냥 내 얘기를 하는 게 제일 낫겠다 싶다.

일단 세 번만 더 생각하라고 얘기할 거다. 시행착오 정도야 필수이겠지만 섣부른 결정은 회복하기 힘든 좌절을 주기도 한다. 실패가 두려워 시도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백 번 생각했다면 백 세번은 고민하고 결정하라는 거다. 그만큼 마음도 단단해질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기어이 내려오겠다면 첫째, 귀농인지 귀촌인지 색깔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귀촌은 그야말로 전원생활이 가능하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도 지을 수 있다. 조용히 살아도 되고 맘대로 살아도 된다. 자연과 어울려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조건도 한 가지 밖에 없다. 손에 쥔 돈이다. 참 쉽고 추천할 만 하다.

귀농은 다르다. 부딪치고 엮이고 굴러야 한다. ‘첨단시설’ ‘억대매출’ 같은 말은 머리에서 지워야 한다. 아직 그런 사람 못 봤다. ‘근골격계 질환’과 약 봉투만 남는다. 눈 씻고 찾아 봐도 ‘눈먼 돈’ 같은 거 없다. 기계 값 지원받는 순서는 몇 년을 기다려야 하고, 100원 짜리에 200원 딱지 붙인 기계를 100원 대주고 100원 내라는 것이니 농촌 지원이 아니라 기업 지원이다. 저리융자도 빚이고 받은 날부터 꼬인다. 도시에서 살았던 경험으로 아이디어 넘치는 생산과 유통을 선보이겠노라 사기 충천하지만 알고 보면 다 헛 똑똑이들이다. 농촌의 도사들에게 묻지 않으면 담당 공무원 찾기도 어렵다.

왜 굳이 농사인지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내가 농사 짓는 이유? 아내 말을 빌자면 “남의 말 듣기 싫어해서” 란다. 옆에서 뭐라고 해도 귓등으로 흘리고 자기 맘대로만 한다고 하는 얘기다. 한번은 아내가 “유헌씨 농사 짓는 거 보면 그냥 예술 하는 사람 같아” 하고 말했다. 처음에는 눈치 없이 좋아했다. ‘드디어 나를 인정하는군.’ 한참 생각해보니 아니었다. ‘아주 예술을 해라 예술을 해’ 혹은 ‘예술 하고 앉아 있네’ 뭐 이런 쪽에 가까웠다.

농사가 기쁘기도 하다. 음식쓰레기 같은 감자 쪼가리가 마리 앙투아네트가 반했다는 감자 꽃을 피우고, 뜨거운 여름 검은 흙 속에서 막 세수한 낯빛의 덩어리가 나올 때는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이 저절로 흐른다. 뭐든 심으면 하늘과 땅이 성장을 보장하니 고맙기도 하다. 장씨아저씨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듣는 “농사가 재미나지 않은가?”라는 말씀에 재미있다는 착각도 단단해 졌다. 어쨌든 농촌으로 돌아오는 귀농(歸農)이 아니라 귀신이 돼서도 농사를 짓겠다는 귀농(鬼農)을 각오해야 한다.

간전댁할머니가 양파밭의 잡초를 매고 있다. 농장에 오겠다고 하시면 안된다고 할까봐 아침 일찍 걸어오셨단다. 이제 말씀하시면 무조건 모시고 오기로 했다. 무릎이 편찮으신 할머니는 쪼그려 앉지 못하고 다리를 편 채로 허리를 굽혀 밭일을 하신다.
간전댁할머니가 양파밭의 잡초를 매고 있다. 농장에 오겠다고 하시면 안된다고 할까봐 아침 일찍 걸어오셨단다. 이제 말씀하시면 무조건 모시고 오기로 했다. 무릎이 편찮으신 할머니는 쪼그려 앉지 못하고 다리를 편 채로 허리를 굽혀 밭일을 하신다.

둘째, 땅 사지 마라. 집도 짓지 마라. 농사 지을 땅도 어르신들에게 여쭤 봐야 내력을 알고 짓기 좋은 작물도 판단할 수 있다. 내려오자 마자 땅 구하고 건물 올리면 독야청청 내 뜻대로 할 수 있지만 실패할 확률이 높다. 농촌 지역사회는 그 자체로 생명을 띄고 있는 유기체 같아서 같이 숨쉬고 움직여야 도움도 받을 수 있다. 어르신들의 잔소리가 사실은 골수 같은 도움이 되고, 말씀을 들어야 끝까지 관심으로 유지되고 발전한다. 처음에 목돈 쓰고 나면 다리에 힘도 풀리고 휘청거리는 살림을 회복하기 힘들다. 감 잡은 다음에 돈 써도 늦지 않다. 최소한 3년은 세금 안 내고 사는 게 좋다.

셋째, 쓰는 만큼 못 번다. 맞춰서 써야 한다. 나도 사실 예전에는 돈 끌어다 여행가고 슬그머니 갚고 했다. 매달 꼬박꼬박 돈이 나왔고, 그 중에 일부를 모아 메울 수 있었다. 농촌에는 예정된 수입이 없다. 수중에 들어와야 내 돈이다. 수입을 예상할 수는 있지만 예상을 넘은 수입은 없다. 이 정도면 살 수 있겠다 싶어 그 만큼은 벌어야지 하면 방법이 없다. 그냥 있는 만큼 쓰는 거다. 카드보다 현금 지출을 늘리고 물건을 사야 한다면 마트보다 가게를 드나들어야 한다. 하지만 겁 먹을 필요는 없다. 살아보니 어떻게든 살아진다. 농민 신용으로는 돈 빌리기도 쉽지 않아서 조여지는 목줄을 금방 느낄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맞춰 살게 마련이다. 그러려니 하면 그렇게 된다.

마지막으로 가족을 최우선에 둬야 한다. 귀농 초기엔 나도 두려웠다. 잘 살 수 있다는 근거가 없었다. 뭐든 열심히 하려 했고 죽어라 움직였다. 보란 듯이 잘 해내서 가족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나도 안심하고 싶었으니까. 지내다 보니 앞뒤가 바뀌었다는 걸 알았다. 도시에서보다 힘들어 하고 저녁이면 파김치가 되는 가장을 보면서 가족들은 더 불안했다. 오순도순 알콩달콩 살고 싶었던 아내는 불만이 컸고, 아이도 야근 없이 매일 들어오는 아빠에 만족해야 했다.

성공하기 위해 내려온 것이 아니라면 애초의 목적은 십중팔구 가족의 행복이었을 거다. 그걸 자꾸 잊게 된다. 고립돼서도 안 되지만 일에만 매달려서도 안 된다. 어차피 걸음마이니 점차 일어서게 될 것이고 앉으나 서나 가족 생각을 놓아서는 안 된다. ‘보란 듯이’의 주어는 가족이어야 한다. 여유가 생겨야 가족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여유를 내서 못한 일 하는 거다.

친구가 비닐하우스에서 감자를 수확하는 날 가족과 친구들이 일손을 돕고 있다. 농촌의 젊은 여성은 대개가 다문화가정을 이룬 경우이고 아이들도 그렇다. 3명 모두 베트남 출신 여성들이다.
친구가 비닐하우스에서 감자를 수확하는 날 가족과 친구들이 일손을 돕고 있다. 농촌의 젊은 여성은 대개가 다문화가정을 이룬 경우이고 아이들도 그렇다. 3명 모두 베트남 출신 여성들이다.

씨감자 두 박스를 다 심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와 있었다. 옷을 갈아 입는데 내 옷이지만 냄새가 심했다. 내일도 흙 묻을 텐데 하루 더 입자 하며 아내 눈치를 보는데 표정이 안 좋다. “유헌씨 나 어지러운 거 같아” 아내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막 돌아?” 물으니 그렇단다. 내가 아팠던 증세다. 따라 할 게 없어서…... 서둘러 다시 옷을 입었다. 혹시 몰라 입원에 필요한 물품을 쌌다. 순천으로 튀었다. 30분 길이 왜 그렇게 멀고 도로 사정은 왜 그리 엉망으로 느껴지는지 속이 타들어 갔다.

종합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아내는 조금 나아진다고 했다. 간호사가 안정제를 주사하고 몇 가지 검사를 하는데 아내는 잠이 들었다. 얼마 후 의사가 말하기를 큰 이상이 없으니 잠 깨면 약 받아 가라고 했다. 이석증 증세가 있다가 나은 모양이다. 깨어야 할 아내는 점점 깊은 잠에 드는 것 같았다. 응급실에 있던 20명 정도가 나를 바라봤다. 아내의 코고는 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살짝 웃으며 아내 옆구리를 찔렀다. 찌를 때 뿐이지 소리는 우렁찼다.

대각선 침대에 앉아 있던 아이가 크게 울었다. 아내 때문인가 하고 보니 주사를 맞느라고 그랬다. 아빠가 달래며 끌어 안아주니 더 크게 울었다. “아빠! 아빠! 아빠가 안 보여.” 안고 있어도 보고 싶다던 느끼한 애로 영화 대사가 생각났다. 이건 그게 아닌데. 아니면 애나 어른이나 똑 같은지도 모르겠다. 제 품에 있어도 눈에 안 보이면 없는 걸로 아는 게 그렇지 않은가.

딴 생각 할 때가 아니다. 아내가 걱정이다. 약한 몸에 코까지 헐었으면 어쩌나…… 진심으로 걱정된다.

前 한국일보 기자 cameraga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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