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알파고와 심야 콜버스

입력
2016.03.25 20:00
0 0

인공지능 기술은 양날의 칼

일자리 대폭 줄까 걱정되지만

혁신주도 못하면 낙오자 전락

콜버스
콜버스

세계를 구성하는 자연적 물질의 근원을 ‘물’이라고 했던 고대 그리스 과학자 탈레스는 전기적 현상을 최초로 발견했다. BC 600년경 호박(琥珀)을 모피에 문질렀다가 가벼운 물체를 잡아당기는 현상을 관찰한 것이다. 그래서 호박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엘렉트론(elektron)’에서 전기를 뜻하는 ‘일렉트리시티(electricity)’가 나왔다. 그로부터 2,400년이 지난 1800년대에 들어 이탈리아 물리학자 알렉산드로 볼타가 아연과 구리를 황산의 묽은 용액에 넣어 전류가 흐르는 것을 확인했고, 이후 전기는 인류의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그 즈음 서양에서는 전기의 발견과 실용화에 대한 담론이 ‘알파고’만큼 많았던 모양이다. <주홍글씨>의 저자 나다니엘 호손은 1851년에 이런 글을 썼다. “전기 덕분에 물질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신경이 되어 순식간에 수천 마일을 오갈 수 있다는 게… 사실인가? 그렇다면 둥그런 지구는 지성으로 가득 찬 거대한 머리요 뇌란 소리! 아니 지구 자체가 사고(思考), 그야말로 오로지 사고일 뿐이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실체가 더 이상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을까!” (제러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에서 재인용)

호손의 미래 인공지능(AI)에 대한 예측이 어쩌면 이렇게 정확한지 놀라울 뿐이다. 리프킨의 말대로 호손의 상상력은 전자공학, 컴퓨터, 원격통신이 글로벌 통신망으로 통합되면서 현실이 되고 있다.

‘알파고’ 덕분에 서울 광화문에 있는 포시즌스 호텔이 떴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이전에는 그 호텔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 대국이 끝난 뒤 며칠 뒤 점심 약속이 있어서 그 호텔에 갔더니 로비와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외국인들이 알파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날 모임에서도 알파고가 주제였다. 한 참석자는 “알파고 덕분에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에게 도움이 됐다”고 운을 띄웠다. 산만한 성격을 가진 아들이 기원에서 바둑을 배우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이에 다른 참석자의 훈수가 걸작이었다. 그는 “아니, 인공지능을 배울 것이지 왜 바둑을 배우느냐”는 것이었다. 그의 우스갯소리에 참석자들이 웃음꽃을 피웠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적절한 지적이었다. 물론 바둑인들에게는 좀 미안한 얘기다.

인공지능의 등장에 대해 원자력의 등장처럼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사례가 종종 언급된다. 영화에나 자주 등장하는 인간을 공격하는 사이보그의 출현 우려도 그렇다. 관리를 잘못할 경우 인간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고용정보원이 분석한 것처럼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점도 당면한 걱정거리다. 당장 2020년부터 영향을 미칠 것이란다. 콘크리트공이나 청원경찰, 환경미화원 등처럼 단순 반복적인 직무뿐만 아니라, 조세행정사무원 행정ㆍ경영지원 관련 서비스관리자, 손해사정사, 선장ㆍ항해사ㆍ도선사, 일반 의사, 관제사 등의 전문직 성향의 직업조차도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확률이 90%를 넘나든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술혁신은 양날의 칼이다. 과거 기술혁신은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거나, 신무기를 만들 때 주로 쓰였다. 따라서 이 혁신기술을 인류에게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제도적 안전장치 마련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이 같은 혁신 경쟁에서 한참 뒤처졌다는 것이다. 기술혁신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는 물론, 알파고를 만든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대표 등은 혁신의 주인공들이다. 과연 우리나라도 이런 혁신가들을 배출할 수 있을까. 또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올라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버 택시는커녕 심야 콜버스 운행조차 불가능한 나라여서 한결 전망이 우울하다. 하지만 늦었더라도 창의력을 생성할 수 있도록 교육패러다임을 바꾸고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 등 기술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하는 게 급선무다. 기술혁신을 주도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낙오자로 전락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