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비만 막기 위해 비싸지는 탄산음료, ‘설탕세’ 논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비만 막기 위해 비싸지는 탄산음료, ‘설탕세’ 논란

입력
2016.03.25 20:00
0 0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이 “2018년 4월부터 청량음료의 설탕 함유량에 따라 부과하는 ‘설탕세’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탄산음료를 둘러싼 해 묵은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설탕 소비 줄이기 캠페인을 벌여왔던 시민단체들은 환영했으나 탄산음료업계는 불공정 법안이라며 반발에 나섰다. 설탕세가 실질적으로 비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가 없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세계 추세는 “탄산음료=해로운 음식”

설탕세의 주 목표는 탄산음료라서 미국에서는 ‘탄산세(soda tax)’라고 부른다. 청량음료는 오랫동안 과도한 설탕 사용 때문에 비만과 이로 인한 당뇨병, 심장병, 암 유발의 주범으로 지목돼 왔다. 영국 공중보건기구(PHE)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설탕세 도입 권고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인들은 하루 열량의 평균 12~15%를 당류에서 얻는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권장 비율은 5%다. 당류에서 얻는 열량이 5%만 낮아져도 영국의 국영 공공의료체계인 국가보건서비스(NHS)는 연 5억 파운드(약 8,333억원)를 아낄 수 있다.

설탕을 함유한 음식은 많은데 왜 청량음료가 주 과세대상이 됐을까? 영국 방송 BBC는 대표적인 설탕더미 음식 초콜릿이 아닌 탄산음료에 세금을 매기는 이유를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초콜릿이나 케이크와 달리 탄산음료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자주 마시는 음료다. 둘째, 몇몇 음료는 지나치게 많은 설탕을 함유하고 있어 한 캔만 마셔도 WHO의 하루 권장 설탕 섭취량 25g을 넘어선다. 셋째, 탄산음료에는 다른 영양소가 없어 설탕과 함께 먹을 만큼 유용하지 않다. 넷째, 어린이들이 일상적으로 찾는 음식이기에 아동비만과 직결된다.

특히 탄산음료가 아동비만과 연관됐다는 점은 설탕세 도입의 최대 명분이다. 오스본 장관은 “5세 아이가 매년 자신의 체중에 해당하는 설탕을 섭취한다. 30년 안에 남자아이의 50%, 여자아이의 70%가 과체중 또는 비만이 될 것이라는 전문가 전망이 나왔다”고 말했다. 설탕세로 얻은 세수를 아동 건강 부문에 사용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설탕세 부과는 영국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PHE 보고서와 11월 하원 보건위원회의 설탕세 도입 권고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도 지난해 설탕세 도입을 추진하다가 겪은 조세 저항 때문에 설탕세 도입에 미온적이었으나 이들 보고서가 나오자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설탕세 도입을 암시하기 시작했다.

시민사회에서 운동으로 설탕세를 지지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TV 출연으로 유명한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설탕과의 전쟁’을 선포해 활동하고 있는 그는 자기 레스토랑에 자발적인 설탕비를 부과하고 있다. 또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여 15만 명을 모으기도 했다. 사이먼 스티븐스 NHS 국장 역시 2월부터 NHS 산하 병원 카페나 자판기에서 팔리는 당도 높은 음료에 설탕세를 부과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비만 문제가 심각한 몇몇 국가들은 이미 설탕세를 부과하고 있다. 2012년 프랑스가 최초로 국가 차원의 청량음료 세금을 도입했다. 2013년 9월에는 멕시코가 탄산음료에 10%의 설탕세를 도입했다. 도입 1년만에 멕시코에서는 연간 탄산음료 소비가 6% 감소했다. 탄산세 논란이 오랫동안 지속된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시에서 2015년부터 청량음료와 냉차에 함유된 설탕 1온스(약 28.35그램)마다 설탕세 1센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서울시가 지난해 10월부터 공공기관 내 자판기에서 탄산음료를 제외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가난한 소비자들만 손해 볼 수도

설탕세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청량음료업계는 다른 음식과의 형평성 문제부터 제기하고 나섰다. 가빈 파팅턴 영국 청량음료협회(BSDA) 회장은 공식 보도자료에서 “2012년부터 탄산음료업계는 설탕함유량을 13.6% 감축했고 2020년까지 20%를 떨어트릴 계획을 진행 중”이라며 “다른 업계들은 오히려 설탕과 칼로리 함유를 늘리고 있는데 정부는 청량음료만 때리려 한다”고 불만을 표했다.

법률 전문가들도 영국의 설탕법이 업계 간 불공정을 유발하기에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일간지 텔래그래프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가공된 음료는 규제하고 더 많은 설탕 성분을 함유한 원액 음료는 규제하지 않는 법안은 불공정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소규모 회사가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 것도 논란거리다.

흥미로운 것은 설탕세 지지 그룹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국가비만포럼의 탬 프라이 대변인은 19일 “이번에 공개된 세금 계획안은 비만 문제를 해결하기에 불충분하다”며 “원액을 활용한 과일주스나 스무디 등도 설탕을 함유하고 있는데 규제대상에서 빠진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영국 회계연구소(IFS)의 연구결과를 인용해 청량음료를 통한 설탕 소비가 전체 설탕 소비의 20%에 미치지 못한다고 보도했다. 극단적으로 청량음료 소비가 완전히 사라진다 해도 영국인의 10분의 9는 여전히 권장 소비량인 전체 열량의 5% 이상 수준에서 설탕을 섭취할 것이다.

설탕세가 비만 개선이라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음료의 주소비층인 가난한 이들에게 세금을 전가하는 효과만 나타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오스본 재무장관이 법인세 인하 방침과 설탕세 도입을 동시에 발표했기에 이런 의심이 더 커지고 있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연구팀이 2015년부터 설탕세를 도입한 미국 버클리시를 연구한 결과 설탕세 전체의 47%, 탄산음료에 부과된 세금의 69%가 소비자에게 전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가정법률사무소 밀스 앤드 리브의 제시카 버트 식품법 전문변호사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 기고문에서 “설탕세는 단순히 탄산음료의 가격을 올릴 뿐 비만 개선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과도한 마케팅 규제나 비만 예방 교육 등이 주목은 덜 받아도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밝혔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카드뉴스]

단거 ‘danger’(위험)

설탕의 유혹, 유죄인가 무죄인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