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직접 사무총장 발탁 ‘원조 친박’
친이계 지원 받으면서 관계 균열
“현재-미래 권력 충돌 불가피” 評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관계는 지난 2005년 옛 한나라당 대표와 사무총장으로 인연을 맺으면서 시작됐다. 이후 10여년간 가까웠다 멀어졌다를 반복했다. 김 대표가 25일 4ㆍ13 총선 공천을 놓고 감행한 ‘옥새 투쟁’을 친박계와 절충으로 마무리하면서 당장의 파국은 면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갈등은 일시 봉합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2004년 12월 전면적 당 쇄신 추진에 나선 박 대통령은 김 대표에게 “오랜 기간 지켜봐 왔다”며 사무총장직을 제의했다. 박 대통령 친정체제 강화라는 평가를 받은 당시 당직개편에서 이회창 직계였던 유승민 의원도 비서실장으로 발탁됐다. 김 대표와 유 의원이 ‘원조 친박’으로 불리는 이유다.
김 대표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으며 친박계 ‘좌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때문에 이듬해 18대 총선을 앞두고 친이계가 주도한 친박계 공천학살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김 대표는 탈당 후 ‘친박 무소속 연대’를 주도하며 당선됐고, 총선 전 “꼭 살아 돌아오시라”며 힘을 실어줬던 박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어렵지 않게 복당했다.
틈새가 벌어지기 시작한 건 2009년 친이계 주도로 김 대표를 원내대표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다. 박 대통령은 “당헌ㆍ당규를 어기면서 그런 식으로 하는 데 반대”라고 밝혔고 김 대표도 뜻을 접었다. 이듬해 김 대표가 세종시 수정안 처리 문제로 맞서자 박 대통령은 결국 “친박 좌장은 없다”며 등을 돌렸다. 이후 김 대표는 친박계가 주도한 19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했고, 고심 끝에 공천결과를 수용하고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질긴 인연은 대선 레이스가 한창이던 2012년 박 대통령이 김 대표에게 박근혜 캠프 선대위 총괄본부장을 맡기면서 다시 이어졌다. 김 대표는 대선 승리 후 편지 한 장을 남겨놓고 떠났다.
김 대표는 2014년 7월 전당대회에서 박 대통령이 지원했던 친박계 맏형격인 서청원 최고위원을 꺾고 대표에 당선됐다. 김 대표는 “풍우동주(폭풍우가 몰아치는 상황에서 한 배를 탔다)”라고 했지만, 이때부터 당내에서는 현재권력인 박 대통령과 미래권력을 꿈꾸는 김 대표의 정면충돌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1주기 때는 남미 순방을 떠나야 했던 박 대통령이 김 대표와 청와대에서 40여분간 독대하며 둘의 사이가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공무원연금 개혁 갈등, 국회법 개정안 파동,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 갈등 등 잊을 만 하면 당ㆍ청간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이동현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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