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 길
박상인 지음
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발행ㆍ244쪽ㆍ1만4,500원
200페이지가 넘는 책 절반이 핀란드 기업 노키아를 설명하는 데 사용됐다. 무려 10년 넘게 전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왕년에 잘 나가는’회사였던 노키아. 2010년 시장에서 외면당해 이제 재도약하겠다고 나서는 기업의 성패를 거론하는 것은 요즘 산업의 템포를 생각하면 좀 뒤늦은 감이 있는데다, 책의 나머지 반이 창사 이래 ‘위기가 아닌 적이 없는’삼성전자의 얘기여서 왠지 긴장감이 떨어지는 듯도 하다. 그러나 철 지난 케이스 스터디에 실망해 지나쳐서는 안될 얘기가 이 책에는 여럿 있다.
핀란드 최초의 글로벌 기업, 13년간 전세계 휴대전화 점유율 1위. 늘 화려한 수식어들과 함께였던 노키아는 1992년 겨우 흑자로 돌아선 지 불과 8년 만에 매출액 10배, 영업이익 100배라는 놀라운 수치를 만들어냈다. 시장가치는 222배나 올랐다. 핀란드 GDP의 4%를 차지하며 명실공히 핀란드 경제의 중추로 자리매김했다. ‘노키아 미러클’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핀란드 내 노키아의 입지가 커질수록 불안감도 높아졌다. ‘노키아가 망하면 핀란드도 망할 것’이라는 추측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2010년 이후 휴대폰 시장은 스마트폰으로 급격히 전환되며 노키아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제 검색엔진에 노키아를 입력하면 미러클 대신 몰락이라는 단어가 연관 검색어로 함께 뜬다. 그러나 노키아가 몰락했어도 핀란드는 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벤처기업과 기업가 정신이 생겨났다는 긍정적 반응마저 있다.핀란드가 그랬듯 한국도 삼성전자의 몰락에 끄떡 않을까?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이며 시장과정부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경제학자인 저자는 고개를 젓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삼성전자의 수직계열화와 순환출자구조, 그리고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출자관계 때문에 ‘삼성전자가 망하면 삼성그룹이 망할 가능성이 크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삼성전자 주가가 70% 이상 급락할 경우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삼성생명과 삼성물산도 사실상 파산할 개연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진짜 걱정하는 건 삼성의 몰락이 아니라 그 다음이다. 한때 노키아 의존도가 높다는 이유로 ‘단일기업 경제’라 불린 핀란드보다 한국은 삼성 의존도가 더 높다. 2014년 말 기준 삼성그룹의 매출액은 GDP 대비 20.4%, 자산총액은 GDP 대비 42%였다. 당기순이익은 2~10대 재벌들의 당기순이익의 총합과 비슷했다.
책이 끝날 무렵부터 시작되는 저자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재벌 개혁’이다. 2013년 이스라엘은 재벌 소유지배구조를 개선했고 금산 분리 정책을 시행했다. 경제력이 집중될 것으로 우려되는 기관엔 특별 관리도 했다. 삼성전자가 망하면 그룹이 망하고 그룹이 망하면 한국이 망하는 꼬리 물기의 위험도 선제적인 정책적 대응으로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한국경제는 봄이 와버린 줄도 모르고 얇아진 살얼음판을 독차지한 채 마냥 겨울낚시를 계속하는 어부 신세와 다를 바 없다는 게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다.
신은별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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